I 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 국가
3) 삼국, 교류와 경쟁 속에서 발전하다
3-1 삼국,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성장하다

고대국가? 뭔지 모르겠다구! ㅠㅠ

자 오늘도 한국사를 배워봅시다. 이제 한국사는 본격적으로 삼국시대에 대해 배우게 될텐데요. 그 유명한 배째 실랴고그랴에 대해서 배웁시다!

<아 죄송합니다 ㅠ 구석기 시대 유머를 하다니--; 내가 무리수다!>

흠흠. 자 각설하고 수업을 시작합시다. 먼저 삼국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이겁니다. '고대 국가'! 그런데 당최 고대국가가 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교과서를 읽어보면 대충 족장이 중앙관리로 편입되서 어쩌구 이렇게 설명이 되는데 이해가 잘 안됩니다. 솔직히 여러분들이 이해하기에는 약간 벅찰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해하지 않으면 또 안 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저랑 같이 좀 더 쉽게 배워봅시다.

단도직입적으로 제가 설명을 먼저 드리면 연맹 왕국은 초등학교 단계, 고대 국가는 중, 고등학교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다구요? 선생님을 족장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은 어디에 계시죠? 주로 교실에서 함께 생활을 하시죠? 교무실이 있고 교장 선생님이 계셔도 초등학교 선생님은 주로 자기가 맡은 반에 머물러 계십니다. 국가에 이 상황을 대입해볼까요? 족장(초등학교 선생님)은 연맹 왕국(초등학교)를 형성하기는 했지만 주로 자신의 지역(교사가 맡은 반)에 주로 머물러 있으며 여전히 자신의 지역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왕 역시 일개 족장에 불과하므로 다른 족장에게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못하고 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왕권이 강해지면 연맹왕국이 고대 국가로 변하게 됩니다. 중, 고등학교 예를 들어볼까요? 선생님들은 이제 대부분 교무실에 계시게 되죠? 담임을 맡은 반이라 하더라도 예전처럼 온종일 그 자신의 반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국가 상황에 대입하면 왕권이 강해져서 족장(중, 고등학교 선생님)은 그 힘을 잃고 자신의 지역(자신이 맡은 반)에서 중앙(교무실)로 오게 됩니다. 이때 더 이상 이들은 족장이라 불리지 못하고 귀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자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초등학교에 연맹왕국(위)을 대입하고 중, 고등학교에 고대국가(아래)를 대입해보자>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드는 것이 있네요. 족장들이 중앙으로 올라오면서 귀족이 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원래 자신들이 다스리던 지역은 이제 누가 다스리게 될까요? 바로 왕의 힘이 드디어 지방까지 침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지방의 조직이 정비되고 동시에 중앙으로 올라온 족장들에게 알맞는 관직을 주기 위해 중앙 관제도 정비됩니다. 따라서 연맹왕국에서 고대국가로 전환하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왕위세습권을 확보할 것, 두번째는 왕권의 강화로 족장들이 예전에 권한을 상실하고 중앙 귀족으로 편입될 것, 세번째는 족장이 다스리던 지역을 왕의 힘으로 통합하여 지방 조직을 정비할 것, 네번째는 중앙으로 뽑혀온 족장들에게 알맞은 관직을 주기 위해 중앙 관제를 정비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왕의 권한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귀족(이전에 족장)의 힘은 막강해서 국가 운영의 주요 사항을 귀족회의를 통해서 결정하였습니다.

고대 국가, 내가 일등!

이런 고대 국가로 가장 먼저 발전했던 것은 바로 고구려입니다. 고구려는 이전 시간에 말했던 것처럼 활발한 정복 전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왕의 권한이 강해졌습니다. 고구려의 고대국가 기틀을 다진 태조왕은 한 군현을 공략하고 옥저를 공략하면서 왕권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이로 인해 태조왕 때 계루부 고씨에 의한 왕위세습이 확정되었습니다.

<전쟁은 위험 부담이 크긴 하지만 승리시 왕권의 강화를 가져온다>

한편 고국천왕은 부족적 전통을 가진 5부를 행정적 5부로 개편했습니다. 이 말은 잘 이해가 안 되시죠? 이전에 소노부, 계루부, 절노부, 관노부, 순노부 5부가 동, 서, 남, 북, 중의 단순한 방위를 뜻하는 행정적 5부로 바뀌었다는 말인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해가 안 가긴 마찬가지입니다. -_-; 좀 더 부연 설명을 드리면 부족적 5부(소노부, 계루부, 절노부, 관노부, 순노부)였던 시절에는 왕족인 계루부는 물론이고 다른 부들까지 독자적인 관직체계를 가지고 있거나 상당한 군사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국가 안에 또 다른 작은 국가가 있는 셈입니다. 이런 것이 고국천왕 시절에 행정적 5부로 개편되면서 국가 안에 작은 국가라는 성격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죠? 왕위 계승도 이 시절에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바뀌어 왕권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에게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과 투쟁의 역사라 말해도 좋을 만큼 중국과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는데 3세기에 특히 위기를 맞습니다. 중국의 삼국 중 하나인 위(여러분들이 익히 잘 아시는 삼국지의 그 위나라입니다)의 장수 관구검이 침입하여 큰 위기를 맞았으나 고구려 장수들의 활약으로 겨우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관구검의 침입 경로와 고구려의 대응>

그리고 4세기 초에는 미천왕이 중국 대륙이 5호 16국 시대(삼국을 통일한 진이 8왕의 난으로 분열된 틈을 타 다섯의 유목민들이 중국 대륙을 공격하여 16개의 나라가 명멸한 세운 혼란한 시대)를 맞아 혼란한 틈을 타 낙랑을 공격하여 오랜 숙원이던 한사군현의 완전한 축출을 313년에 달성했습니다.
명당에 자리 잡은 백제

백제는 고구려에 비하면 상당히 짧은 시간 안에 고대 국가 체제를 갖춘 편입니다. 고구려가 고대 국가 체제를 늦게 갖춘 이유를 들자면 한사군과의 투쟁이 4세기까지 지속되고 지속적으로 중국 침입에 시달려온 것이 있습니다. 반면 백제는 한강 유역에 자리 잡아 비교적 빠르게 국가 체제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로또도 명당이 있듯이 백제 역시 자리를 잘 잡았다. 명당은 바로 한강유역!>

한강 유역이라는 비교적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은 백제는 고대 국가로 자리를 잡아 나가면서 남쪽의 나름대로 세력을 보유하고 있던 마한을 대신한 세력으로 자리 잡아 나갔습니다. 3세기에는 고이왕이 활발한 정복활동을 보이면서 왕권을 더욱 다져나갔고 내부적으로 6좌평이라는 관제와 관리 복색을 제정하여 지배체제를 정비하여 고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참, 그리고 백제가 고구려와 같은 부여 계통이라는 것은 아시죠? 예전에는 삼국사기 기록에 따라 백제를 건국했던 세력이 고구려계 유이민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고구려, 백제 모두 공통의 분모를 부여 계통으로 생각하고 있는 학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뭐가 되었든 간에 고구려와 백제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는 고구려의 돌무지 무덤인 장군총, 아래는 백제의 돌무지 무덤인 석촌동 고분군. 비슷한 양식이다>

가장 발전이 느렸던 신라

이제 삼국 중에서 가장 발전이 느렸던 신라에 대해서 얘기해봅시다. 신라는 상대적으로 한반도 남동쪽에 치우친 바람에 유이민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고 토착세력들이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신라는 원래 진한의 한 소국이었던 사로국에서 출발하였으며 6부족 연맹체였습니다. 그런데 이 신라라는 나라는 희한한 것이 박, 석, 김씨 세 명의 왕이 돌아가면서 왕을 했습니다.

<왕도 돌아가면서 하자!>

왕을 돌아가면서 하니 그게 어디 왕 같았겠습니까? 그래서 신라에서는 왕을 왕이라 부르지 않고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등으로 불렀습니다. 특히 이사금이라는 뜻은 그 이름의 연원이 옛말에 이(齒)가 많은 사람, 즉 연장자는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죠. 왕의 칭호를 봐서도 왕권이 다른 국가보다 상당히 '허접'했음을 우리는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왕권이 본격적으로 강해진 것은 4세기 후반 내물왕때입니다. 내물왕은 활발한 정복전쟁을 벌여서 진한 전역을 장악하고 자신이 가, 간들 중에 가장 으뜸이라는 뜻의 마립간(대군장)을 왕호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때가 되면 박, 석, 김이 돌아가면서 왕을 하던 것이 이제는 오로지 김씨만 혼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들이 내물왕 혼자 힘으로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르기 대장, 내물왕. 가야, 왜한테 다굴맞자 고구려에게 일러 바친다>

내물왕이 다스리는 신라는 당시 가야, 왜 연합에게 엄청난 다굴을 맞고 당시 동북아의 최강자였던 고구려에게 일러 바칩니다. 당시 고구려는 자신이 주도하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내물왕의 신라를 자신의 휘하로 삼아 고구려가 명실공히 천하의 중심임을 선포하고 싶었습니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자 고구려는 가야와 왜의 공격을 쫓아내었고 신라는 이를 이용하여 내부적으로 마립간의 권위를 높였습니다. 대신 한동안 고구려의 간섭을 받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지요.

대단한 초등학생이었던 가야

우리는 보통 이런 말을 많이 듣곤 합니다. 얘는 머리는 좋은 데 공부를 안해서... 그 말에 딱 맞는 국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가야였습니다. 가야는 낙동강 하류 지역에 자리 잡은 연맹 왕국이었습니다. 비교적이 철이 풍부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지요. 3세기 즈음에는 금관가야가 가야 연맹의 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를 전기 가야 연맹이라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바탕으로 낙랑과 왜를 연결시키는 중계 무역을 하면서 계속 해서 수준 높은 철기 문화를 발전시킵니다.

<왼쪽은 가야의 철제 갑옷, 오른쪽은 가야 보다 더 늦은 시기의 일본의 철제 갑옷. 가야의 기술력을 알 수 있다>

위에 있는 그림만 봐도 가야가 수준 높은 철기 문화를 향유 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요? 이처럼 가야는 장래가 촉망 받는 국가였으나 신라를 지원하기 위해 내려온 고구려 군대에 패배하면서 쇠락의 길에 빠져듭니다. 전기 가야 연맹이 쇠퇴하자 5세기 후반 부터는 전기 가야 연맹을 대신하여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후기 가야 연맹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이미 고대 국가의 기틀을 갖춘 백제와 신라 틈바구니 끼어서 성장하지 못하다가 결국 신라에 병합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관복의 색깔에 담겨 있는 이치

삼국이 고대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앙 관제를 정리하는데 그 중에서 두드러진 특징이 관복의 색깔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백제는 6품 이상은 자줏빛 옷을 입고 11품 이상은 붉은 옷, 16품 이상은 푸른 옷을 입게 했습니다. 신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1~5품은 자색, 6~9품은 비색, 10~11품은 청색, 12~17품은 황색을 입게 했습니다. 아마 고구려도 그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왜 구태여 관리의 품계에 따라 색깔을 다르게 넣었을까요? 연맹국가에서 고대국가로 넘어가는 시기와 관련 지어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 ^^ 정답은 수업 시간에 공개됩니다. 
Posted by Av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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