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국가
2) 고조선과 여러 나라의 성장
2-2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등장한 여러 나라

익숙하지 않은 나라, 그러나 알고보면 뿌리가 되는 나라

음... 이 단원은 어떤 얘기를 먼저 시작할까 고민을 많이했습니다. 사실 별로 재밌게 얘기를 풀고 나갈만한 실마리가 부족한 단원이여서 ^^; 여러분이 좀 이해를 해주세요.

여러분이랑 제가 나름 세대차이가 나잖아요? ㅠㅠ 그래서 저랑 같은 드라마 봤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드라마 주몽아시나요? 드라마 주몽에서 보면 주몽 역할을 맡은 송일국이 어느 나라 왕자로 나오지요? 바로 부여입니다.

<완전 불쌍한 부여 왕자로 나왔던 송일국>

주몽이 나중에 고구려를 세운 건 모두 알고 계시죠? '삼국사기'란 책에 보면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건국설화가 나옵니다. 뭐 한나라의 건국설화답게 온갖 뻥(-_-;;)이 난무합니다. 그런 건국설화를 제가 일일이 얘기하기는 힘들고 다만 주목할만한 대목이 한 군데 있는데 그것은 주몽이 부여의 왕자였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버뜨!!! 백제 역시 부여의 일족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책인 '주서'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백제는 그 선대가 대개 마한의 속국이며 부여의 별종이다. (중략) 왕의 성은 부여씨이고 '어라하'라고 부르며, 백성들은 왕을 '건길지'라고 부르는데, 모두 왕이라는 뜻이다." 
                                                                                                                        『주서』권49 열전 제41

백제가 부여의 별종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백제가 부여의 한 갈래라는 말입니다. 또한 왕의 성이 부여씨라는 것을 보면 백제가 부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실들을 볼 때 한국 고대사의 중심 국가였던 고구려, 백제 모두 부여의 일족으로 자처한 것을 보면 부여가 우리나라 역사에 매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아는게 거의 없다고 말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죠

<부여에 관한 자료? 그런거 없다>

부여에 관한 기록은 중국 역사책에 남아있는 단편적인 몇 줄의 기록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그 기록을 보고 부여의 모습을 추측할 수 밖에 없습니다.

힘이 약한 왕?

자 그럼 부여의 모습을 그려볼까요? 선생님은 먼저 교과서에 나와 있는 '흉년은 왕의 책임?'이라는 설명이 재밌네요. 우리가 흔히 아는 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보통 우리가 그리는 왕의 모습은 대략 다음과 같지 않을까요?

<꽃돌이로 친위대를 만들거나...>

<맘에 안들면 사약 크리!>

하지만 교과서에 설명을 보면 흉년 들었다고 왕을 죽이자고 하네요? 이거 어떻게 된거죠? 조선시대 때는 왕의 명령이라면 사약도 벌컥벌컥 마시고 부족하면 한잔 더달라고 하던 그런 모습이 아니네요? ;; 오히려 왕을 죽이려고 하다니! 이것은 이 당시에 왕의 힘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증거입니다. 왜 왕의 힘은 강하지 않았을까요?

사정은 이렇습니다. 비교적 근처에 있으면서 비슷한 풍습을 가지고 있는 부족들끼리 외부에 거대한 침입에 맞서서 같이 대항하자는 약속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서로 협력을 하자고 약속한 부족들 간에 일종의 연맹체가 생기는 거죠. 이것을 연맹왕국이라합니다. 이들은 연맹의 대표를 선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연맹왕국의 왕입니다. 이 연맹왕국의 왕은 이 연맹을 구성하는 부족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강한 부족의 족장이 맡게 됩니다. 그렇다면 왕의 힘은 절대적으로 강할까요? 아니겠지요? 왕은 그 왕국의 대표자일뿐 다른 족장들 역시 왕에 못지 않은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된다고요? 예를 들어보죠 ^^

<반장은 반을 대표할 뿐 다른 학생들을 지배하지 않는다>

여러분 반에서 각자 학급임원을 뽑았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뽑힌 반장, 부반장이 여러분보다 막대한 힘을 가지고 여러분을 지배하려 하나요? 그건 아니죠? ^^ 반장 역시 여러분과 똑같은 학생 중 한명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반을 대표하여 여러가지 다른 일을 수행한다는 점이죠. 이 시기 연맹왕국의 왕도 학급의 반장처럼 다른 여러 부족을 대표하여 왕의 되었을 뿐이지 그 세력은 그 다지 강하지 않았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죠? 부여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부여도 일종의 연맹왕국이었습니다. 부여는 왕 아래에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는 관리가 있었는데 이를 사출도라고 합니다. 부여는 이 마가, 우가, 저가, 구가가 이끄는 네 개의 큰 부족과 부여의 왕으로 대표되는 부족이 연맹하여 만들어진 연맹왕국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총 5개의 부족 연맹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게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가(加), 간(干) 따위의 말이 으뜸, 수장, 군장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미 친숙한 표현입니다. 잘 모르겠다고요? 징기스칸을 들어봤잖아요. 칸, 간, 가 따위의 말이 모두 으뜸, 수장이라는 말이랍니다. 여하튼 이들 '가'들은 왕을 선출하기도 하고 왕에게 흉년의 책임을 묻는 등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참 마지막 한 가지 더! 부여에 참 끔찍한 풍속이 하나 있어요. 혹시 순장이라고 아시나요? 왕이 죽으면 왕이 가지고 있던 물건과 함께 산 사람들을 같이 묻는 풍속인데 비단 부여에서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고 고대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풍속이랍니다.

깡패국가, 고구려


한국 고대사 얘기를 하면 빠지지 않는 나라가 바로 고구려입니다. 한국인들 모두 고구려에 대해 막연한 향수를 가지고 있으며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대한민국의 영어식 표현인 'Korea'가 고구려에서 나온 것임을 감안한다면 고구려가 한국사에 끼치고 있는 영향이 매우 지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구려가 깡패 국가였다는 믿어지시나요? 

<나 고구려야 몰라? 내가 왕년에 껌 좀 씹고 침 좀 뱉었거든?>

왜 고구려가 깡패국가일까요? 아 이거 또 선생이라는 사람이 아무런 증거 없이 애먼 나라(?) 비난하는 거냐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없는 말 지어내겠습니까? 고구려에 삥뜯기에 관해서는 분명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기록을 볼까요?

"나라가 작고 큰 나라 사이에서 핍박받더니 마침내 (고)구려에 신속하였다. (고)구려는 다시 그 중에서 대인을 사자로 삼아 서로 맡아 주관토록 하고 또 대가로 하여금 세금을 통틀어 책임지게 하니 맥포와 물고기, 소금, 바다 속 식물을 천리에서 짊어 메고 이르렀다. 또 미녀를 보내 비첩으로 삼게 하였는데 노복과 같은 것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중 옥저에 관한 내용

어이쿠, 이거 기록을 보니 각종 산물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미녀까지 바치네요? 이쯤되면 한 가지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건 바로...

<빠, 빵셔틀 -_-??>

그렇다. 옥저는 바로 빵셔틀이었던 것! 옥저 근처에 있던 동예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옥저, 동예는 두 국가는 고구려의 강력한 압박과 수탈로 인해 연맹왕국 단계에도 가보지도 못하고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슬픈 얘기네요. ㅠㅠ 자, 이제 이쯤 되면 고구려가 깡패국가라는 것에 대해서 다들 동의하시죠?

그렇다면 고구려는 왜 이렇게 주변 나라의 삥이나 뜻으면서 못된 짓을 했던 걸까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먹을 것이 없었다는 것!

<배고픈데 먹을 것 따윈 없다-_-;>

고구려가 자리 잡은 지역은 넓은 들이 없는 산악 지대였고 이들은 농사를 지어도 먹을 게 부족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주변 국가를 정복, 약탈하게 됩니다. 나름 사연이 다 있지요?

그렇다면 좀 더 고구려의 모습을 살펴볼까요? 고구려도 부여처럼 5부족이 연맹한 연맹국가였습니다. 5부족은 소노부·절노부·순노부·관노부·계루부로 왕을 배출하던 부는 계루부였습니다. 고구려도 부여처럼 상가, 고추가등과 같은 가(加)들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중대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諸加:모두 제, 더할 가)회의를 열어 그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처자는 노비로 삼았다고 하네요. 고구려 역시 '가'의 힘이 매우 강해보이죠?

훈훈한 시골 마을, 옥저와 동예

앞에서도 잠깐 옥저와 동예 얘기가 나왔지만 이 두 나라는 훈훈한 시골 마을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옥저와 동예는 함경도와 강원도의 북부 동해안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서 토지는 비옥하고 많은 특산품이 나서 생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왕이 없었고 각 마을마다 읍군, 삼로라고 불리는 군장이 있었다는 점도 시골 마을을 보는 느낌이지요.

<평화롭고 아름다운 호빗마을. 아니 그런 곳과 비슷한 옥저와 동예!>

또한 시골에서는 전통이 다른 곳보다 강하게 남아 있듯이 옥저와 동예에도 신석기 시대 전통이 남아있습니다. 신석기 시대 공동체적인 풍습을 반영하듯이 옥저에서는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했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 무덤에 안치시키는 골장제(骨葬制: 뼈 골, 매장할 장, 법도 제)라는 풍습이 있었고 동예는 씨족 사회의 전통이 남아 족외혼을 엄격히 지켰으며 서로의 영역을 지키고 만약 그 영역을 침범했을 경우 책화(禍: 꾸짖을 책, 재앙 화)하여 노비나 소, 말로 배상하게 하였습니다.

신비함이 있는 곳, 삼한

여러 초기 국가들 중에 이제 삼한이 남았네요. 삼한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발견되는 기록을 보면 삼한의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한반도 남부에 있던 진(辰)이라는 국가입니다. 이전 시간에 고조선의 성장과 멸망을 다루면서 고조선이 한(漢)과 이 진(辰)이라는 나라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시도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바로 그 진입니다. 다만 이 진이라는 나라가 정말 실체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

어쩄든 이 진을 바탕으로 마한, 진한, 변한의 연맹체가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던 것이 마한! 마한은 총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국가인 목지국은 마한왕 혹은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를 주도해나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낙동강 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한 변한이 있었고 대구와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진한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 12개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자, 재미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볼까요?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인 신지, 읍차라는 사람이 존재했는데 이런 정치적 지배자 외에도 종교적 지도자였던 천군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이게 뭐가 흥미로운거야 라고 하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봐요. 흥미로울 테니 ㅋ 종교적 지배자는 신성한 지역인 소도라는 곳을 다스렸는데 만약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와서 숨는다면? 그 누구도 소도에 숨어든 죄인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87년 6월 항쟁당시 명동성당도 소도와 같은 곳이었다>

한참 뒤에 배우겠지만 한국 현대사에도 소도 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명동성당이었습니다. 명동성당에 숨어든 시위자들을 공권력을 동원해서 잡아들일 수 없었지요. 그만큼 이곳은 바깥 세상과는 다르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삼한 사회가 제정(政:제사 제, 정치 정) 분리 사회라는 것 입니다. 이제 더 이상 종교적 지배자가 정치적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외에도 삼한에 특이할만 점은 바로 벼농사입니다. 일찍부터 벼농사가 발달한 이 지역에서는 저수지 유적이 발견되어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 등 많은 저수지 유적들이 있습니다. 또한 변한 지역에는 철이 많이 생산되어 이것을 화폐처럼 사용하기도 했고 낙랑과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김제 벽골제의 제방(위)와 덩이쇠(아래)>

하늘에 제사를 드리자! 

다 끝난 줄 알았죠? ㅎㅎ 아직 두 가지 더 남았습니다. 제가 설명 안 하고 넘어간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행사와 특이한 결혼 풍습이 그것입니다. 초기 국가들의 기록에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제천행사인데 부여는 12월에 영고, 고구려는 10월에 동맹, 동예는 10월에 무천, 삼한은 5월에 수릿날과 10월에 계절제가 있습니다. 사실 이 같은 풍습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추석과 설날이 일종의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요.

<아직도 지내는 제사가 제천행사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들은 왜 공통적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을까요? 우리의 명절 때 모습을 잘 생각해봅시다. 모든 가족들이 일단 큰 집으로 모입니다. 그러면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여러 친척들을 보고 우리가 가족이라는 느낌을 받겠죠? 옛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천행사를 통해 여러 부족들을 모으게되고 그 결과 단결과 결속을 강화가 됩니다. 이런 큰 행사를 통해서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죠. 농사가 잘 되는 것을 비는 것은 당연한 것이구요 ^^

특이한 결혼 형태

<결혼! 설레는 분들 많이 계시죠?>

결혼, 저도 아직 안했는데 이 단어 들으면 막연한 환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구려와 옥저에는 조금 특이한 형태의 결혼제도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서옥제와 민며느리제입니다. 고구려의 서옥제는 남자가 혼인을 한 뒤 일정 기간 신부 집 뒤에 서옥이라는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살다가 자식이 태어나 다 크게 되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남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혼인 풍속입니다. 옥저의 민며느리제는 서옥제와는 반대로 여자 나이가 10살쯤 되면 혼인을 약속하고 신랑 집에서 여자를 맞이하여 다 클때까지 길러 아내로 삼는 것입니다. 여자가 어른이 되면 친정으로 되돌려 보내는데 이때 친정에서는 돈을 요구합니다. 요구한 돈을 지불하면 여자는 다시 신랑 집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많이 이상하지요? 왜 이 같은 결혼 제도가 나타났는지에 대해 고대사회의 특징과 관련해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볼까요? 오늘의 문제이고 수업 시간에 정답을 공개됩니다!
Posted by Avil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