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 국가
4) 남북국으로 나뉘어 발전하다
4-1 통일 신라의 발전
4) 남북국으로 나뉘어 발전하다
4-1 통일 신라의 발전
남북국 시대?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킴으로써 한국사는 본격적으로 남북국 시대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가만... 신라가 삼국을 통일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나라가 하나만 있어야지 왜 남북국시대죠? 적어도 남국과 북국이 있다는 소리인데 이게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_-!
<이것이 레알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이다>
흠, 사정을 한 번 들어볼까요? 바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수한 이후 동시대에 공존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나라는 고구려 유민 출신이었던 대조영이 세웠던 발해입니다.
<발해 지도>
남북국 시대라는 말은 발해 역시 한국사의 하나의 영역으로 간주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라를 남국, 발해를 북국으로 파악해 이 두 나라의 역사를 모두 한국사로 파악함으로써 한국사가 전개되었던 지역을 좀 더 넓게 보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남북국이라고? 그럼 삼국통일하려고 이때까지 뼈빠지게 싸운 나는 뭐가 되냐?-_->
바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다는 의미가 자칫 퇴색해져 버리는 겁니다. 발해를 한국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상당히 어색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통일하려고 당나라 끌어들이고 수많은 전쟁터를 누볐던 김춘추, 김유신 등은 조금 허탈해지겠죠? ^^; 따라서 역사학계에서는 이 용어를 가지고 논란이 있으며 아직 마땅한 대체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실제 그 당시 역사기록에도 신라가 발해를 북국으로 불렀던 것이 남아있는 만큼 남북국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도 타당해보이며 한국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그 취지는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초의 민족의식이 싹트다
신라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로서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냈다고 평가합니다. 그렇다면 민족이란 무엇일까요? 이 부분을 하기 전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민족의 정의는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우리가 민족하는 말은 많이 쓰지만 정작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르키는지 모를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약간 오덕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그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
하지만 실제 그 당시 역사기록에도 신라가 발해를 북국으로 불렀던 것이 남아있는 만큼 남북국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도 타당해보이며 한국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그 취지는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초의 민족의식이 싹트다
신라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로서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냈다고 평가합니다. 그렇다면 민족이란 무엇일까요? 이 부분을 하기 전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민족의 정의는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우리가 민족하는 말은 많이 쓰지만 정작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르키는지 모를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약간 오덕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그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
<오덕오덕할수도 있지만 16분 34초부터 17분까지만 보세요 ^^>
자 어떻습니까? 민족이라는 것은? 민족을 형성하는 요인 중에는 혈연, 지역, 언어 기타 등등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이 어떤 민족인지 자각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는 한민족이라고 자각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언제부터였을까요? 역사학자들은 조심스럽게 그것이 삼국통일 이후 부터 천천히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삼국통일 이전에 고조선이라는 최초의 국가가 있고 부여, 옥저, 동예, 삼한, 가야,고구려, 백제, 신라 수많은 나라가 난립했지만 그 어느 나라도 우리는 고조선의 후손이며 우리 모두는 한민족이다라고 내세운 나라는 없었습니다. 다만 서로 비슷한 말을 쓰고 풍습이 비슷하다는 정도였지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민족이 될 수 없었지요.
<언어와 풍습이 같다고 민족이 될 수 있나? 2프로 부족하다!>
서로 같은 민족이 되기에는 어색했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백성들은 통일된 이후 본격적으로 하나가 되어가기 시작합니다. 신라는 일통삼한(一統三韓: 하나 일, 거느릴 통, 석 삼, 한나라 한)을 내세우며 세 나라가 마침내 하나의 집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옛 고구려, 백제 지배층을 신라의 골품 제도 안으로 편입시켜 같은 지배층으로 인정했으며 지방 행정 구역도 9주로 개편하여 신라, 백제, 고구려 지역에 각 3주씩 설치하여 모두 같은 국민이라는 것을 표방했습니다. 그리고 병역의무도 신라인은 물론 고구려, 백제, 말갈 사람까지 모두 포함하여 중앙군단인 9서당을 편성했습니다. 지금이야 군대가는 것이 매우 싫겠지만 군대를 가서 병역의무를 진다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군대에 피정복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피정복민을 이제 동등한 백성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죠 ^^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 백성은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일단 신라의 통일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라 고구려, 백제의 백성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아무래도 백제의 백성이 많게 됩니다. 제가 동등하게 9주를 설치했다고 하지만 사실 새롭게 설치된 주는 주로 백제, 가야 지역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새롭게 설치된 주들은 주로 백제, 가야 지역이다. 고구려 옛 땅은 기존의 한주, 삭주, 명주가 확장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고구려, 백제 지배층을 신라 지배층과 같은 골품제도 안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점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 결국 고구려, 백제는 신라가 약해진 틈을 타 서로 자신들의 뿌리를 다시 찾습니다. 그것이 결국 후삼국시대로 이어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완전한 하나의 민족이 되지 못했기에 이들이 다시 찢어지는 것은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라왕은 킹왕짱!
신라의 민족 융합책을 보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통일 이후 신라의 발전 양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 먼저 신라는 천년이나 지속되었던 왕국인 만큼 이에 따른 시대 구분도 존재합니다.
|
상대 |
중대 |
하대 |
시기 |
건국(BC57)~진덕여왕(AD654) |
무열왕(654)~혜공왕(780) |
선덕왕(780)~경순왕(935) |
왕위계승 |
성골 |
무열왕 직계 |
내물왕 방계 |
주요관직 |
- |
시중 |
상대등 |
정치체제 |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 |
전제 왕권 |
귀족 연립 체제 |
위의 표는 신라 시기에 대한 시대 구분 표입니다. 통일 이후 신라 전성기에 해당되는 시기는 중대로 이 시기는 무열왕의 직계 후손들이 왕위를 독점적으로 세습하면서 왕권을 공고히 다지며 전제왕권(專制王權, 오로지 전, 절제할 제, 임금 왕, 권세 권)을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전제왕권은 무엇일까요?
<영화 300에 나오는 크세르크세르 1세가 대표적인 전제왕권의 예라고 볼 수 있다>
전제왕권은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지배하는 형태입니다. 과연 전제왕권이라는 표현이 옳으냐는 문제점도 있긴 하지만 교과서에서 일단 전제왕권으로 표현하고 있는 만큼 그 문제는 살짜쿵 넘어가보도록 해보죠 ^^ 시간이 난다면 재밌는 사실들!에서 좀 더 다뤄볼까 합니다.
그렇다면 신라의 왕은 어떻게 해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게 되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데 이 방법처럼 빠른게 없습니다. 바로 숙청입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문왕 뒤를 이어 즉위한 신문왕은 귀족 세력들을 하는 꼬라지를 보니 통일된 국가를 이끌어갈 자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신라의 왕은 어떻게 해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게 되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데 이 방법처럼 빠른게 없습니다. 바로 숙청입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문왕 뒤를 이어 즉위한 신문왕은 귀족 세력들을 하는 꼬라지를 보니 통일된 국가를 이끌어갈 자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신문왕, 귀족들을 없애버릴 결심을 하다>
마침 김흠돌의 모반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귀족 세력를 싸그리 없애버리게 됩니다. 귀족 세력의 힘이 꺽이게 되자 이제까지 귀족을 대표했던 상대등 보다 왕명을 수행하는 집사부의 시중의 권한이 더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말 안 듣고 뻣뻣한 진골 귀족들보다 왕의 말을 잘 들었던 6두품 세력들을 주로 등용하여 자신을 보좌하게 했습니다. 이런 전제왕권 시기에 지방행정 조직도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되며 유학 사상이 강조되며 국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설치되어 전제 왕권을 뒷받침했습니다.
토지제도도 왕권이 강해짐에 따라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귀족들이 소유했던 녹읍(녹읍 안에 살던 백성들 노동력 징발 가능)을 폐지하고 대신 관료전(관료전 안에 살던 백성들 노동력 징발 불가, 조세를 걷을 수 있는 권리만 있음)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함으로써 귀족을 통해서 백성을 지배하기 보다는 왕이 직접 백성을 지배하겠다는 의도를 보였습니다. 어때요? 이 시기 신라 왕의 힘이 킹왕짱이라는 게 느껴지시나요?
전제 왕권이 무너지고 혼란한 시절이 도래하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영원할 것 같던 신라왕의 힘도 결국 쇠퇴하고 맙니다. 혜공왕 말기에 귀족들이 96각간의 난을 일으키는데 이 때 이후로 강대하던 왕의 힘도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심지어 혜공왕은 이찬 김지정이 일으킨 반란에 죽는 참사가 일어납니다. 혜공왕이 죽고 선덕왕이 왕위에 오르는 이 시대를 신라 하대로 부르며 이후부터는 내물왕 방계들이 왕이 됩니다.
이쯤되면 왕의 힘이라는 게 거의 없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잘 생각해봅시다. 이때까지 왕이 혼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데 그 권력을 휘두르던 왕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죠? 자연스럽게 왕이 휘두르던 권력은 귀족들에게 분산되고 귀족들은 그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면서 나라는 개막장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겁니다.
토지제도도 왕권이 강해짐에 따라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귀족들이 소유했던 녹읍(녹읍 안에 살던 백성들 노동력 징발 가능)을 폐지하고 대신 관료전(관료전 안에 살던 백성들 노동력 징발 불가, 조세를 걷을 수 있는 권리만 있음)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함으로써 귀족을 통해서 백성을 지배하기 보다는 왕이 직접 백성을 지배하겠다는 의도를 보였습니다. 어때요? 이 시기 신라 왕의 힘이 킹왕짱이라는 게 느껴지시나요?
전제 왕권이 무너지고 혼란한 시절이 도래하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영원할 것 같던 신라왕의 힘도 결국 쇠퇴하고 맙니다. 혜공왕 말기에 귀족들이 96각간의 난을 일으키는데 이 때 이후로 강대하던 왕의 힘도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심지어 혜공왕은 이찬 김지정이 일으킨 반란에 죽는 참사가 일어납니다. 혜공왕이 죽고 선덕왕이 왕위에 오르는 이 시대를 신라 하대로 부르며 이후부터는 내물왕 방계들이 왕이 됩니다.
이쯤되면 왕의 힘이라는 게 거의 없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잘 생각해봅시다. 이때까지 왕이 혼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데 그 권력을 휘두르던 왕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죠? 자연스럽게 왕이 휘두르던 권력은 귀족들에게 분산되고 귀족들은 그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면서 나라는 개막장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겁니다.
<신라 하대의 상황, 개판이다>
자 어느 정도 개판이었을까요?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완전히 회복하여 이제까지 왕이 지급해주던 관료전은 폐지되고 다시 녹읍이 부활됩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마음대로 토지를 소유하며 자신들의 토지 규모를 늘리고 농민들을 쥐어 짜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이제 왕도 해보고 싶어서 서로 왕이 되겠다고 치고 받고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로 155년 20명의 왕이 교체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왕의 권력은 더욱 더 보잘 것 없이 됩니다.
<155년 동안 20명의 왕이 교체되었다고? ㅋ 그러고도 니가 왕이니?>
왕의 힘은 갈수록 약해지고 귀족들을 막을 만한 사람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조용히 힘을 키우던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지방에 호족이었습니다. 호족들은 자신의 근거지에 성을 쌓고 군대를 보유하여 백성들을 실질적으로 다스렸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해상왕 장보고도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해상호족의 일족으로 볼 수 있지요.
<장보고도 일종의 호족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당에서 유학했던 6두품 세력들도 신라 말기 혼란한 상황을 보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유교를 깊이 공부했기 때문에 고대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골품제를 비판했습니다. 이렇듯 신라 하대 사회에서 호족, 6두품 세력들이 성장하고 있었고 새로운 사상도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불교 경전 보다 참선을 중요시 하는 선종이 나타나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으며 풍수지리설 역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같은 사상의 변화 역시 새로운 사회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5소경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자 이제 문제를 풀어봐야지요? 신라는 통일 이후 수도가 동쪽에 치우친 것을 보완하기 위해 5소경을 만듭니다. 이 5소경에는 그 지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멸망한 나라의 지배계층을 주로 이주시켰는데 어떤 이유에서 그랬을까요? 정답은 수업시간에 공개됩니다. ^^
5소경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자 이제 문제를 풀어봐야지요? 신라는 통일 이후 수도가 동쪽에 치우친 것을 보완하기 위해 5소경을 만듭니다. 이 5소경에는 그 지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멸망한 나라의 지배계층을 주로 이주시켰는데 어떤 이유에서 그랬을까요? 정답은 수업시간에 공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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