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dustrialization in the United States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주변 나라로 퍼지게 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면 그것을 감추고 숨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여서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방직기, 방적기 기술을 은폐하려 노력하였는데 감춘다고 감춰지나요? 결국 다른 나라로 산업혁명의 기술이 조금씩 흘러들어가면서 산업혁명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산업혁명 후발 주자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때 당시만 해도 아주 운이 좋게 독립한 신생국으로 유럽에 비하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국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지금과는 매치가 안 되서 어리둥절하실 수도 있지만 실상이 그랬습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게 여러 원인이 있지만 이 산업혁명 덕분이라는 걸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국 산업혁명의 아버지이자 배반자 슬레이터라고 불리는 새뮤엘 슬레이터

사진에 나온 분은 새뮤엘 슬레이터인데 미국에서는 미국 산업혁명 시스템을 이끈 아버지로 평가 받지만 영국에서는 배반자(the Traitor)라고 불립니다. 그도 그럴것이 수력 방적기 기술을 미국으로 가져 갔거든요. 뭐 솔직히 지금 관점으로 보자면 산업 스파이...(그것도 국가 핵심기술)인데 저런 호칭이 붙은 것도 이해는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술을 새뮤얼 슬레이터만 가져갔냐 하면 또 그건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은 이때 막 독립한 신생국이었고 영국이랑 같은 언어를 공유했습니다. 지어 이때는 막 독립한 때라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도 분화가 되기 이전이라 더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모호한 점 때문에 많은 영국인들이 미국에 건너가서 새로운 부의 창출을 꿈꾸었고 이들이 미국 산업화에 큰 이바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한 나라였다가 떨어져 나온 것이 미국에는 행운이 된 셈입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미국의 아주 폭발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미국의 산업화 조건은 영국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영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광대한 토지와 자원이 있었고 막대한 미개척 지대를 개척해나가면서 미국의 산업은 그야 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이런 미국의 성장세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철도입니다.

1913년 철도의 길이, 미국의 엄청난 철도 길이에 놀랄 수 밖에 없다.

그래프에서 보시는 것처럼 미국은 1913년 전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아니 전 세계의 철도망을 합쳐도 상대가 될만한 철도 체제를 구축합니다. 제가 앞선 시간에 철도야 말로 산업혁명의 총아라고 말씀드렸는데 산업혁명 후발주자였던 미국이 이제는 당당히 초일류 국가로 들어선 것을 철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통계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1인당 소득이나 산업화 수준도 1900년 초반 대면 이미 영국을 넘어서게 됩니다. 영국의 아성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미국의 문제였던 남북갈등도 1865년 남북전쟁 종결로 봉합되자 미국은 날개를 단 셈이 되었습니다. 대체로 1800년대 후반이 되면 내전에 쏟았던 에너지를 산업화에 쏟으면서 미국은 당당히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시점에 미국이 폭발적으로 철도를 확장하게 된 것은 주식회사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철도 같은 기간 사업은 당장에 들어갈 돈이 많기 때문에 쉽사리 사업에 손을 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주식인데 회사 권리의 일부를 주식이라는 형태로 팔아서 주식을 산 사람들에게 회사의 이익을 배당해주고 대신 자본금을 얻는 형태였죠. 이런 회사를 주식회사라고 하는데 역사전공이라 더 자세히 얘기할 자신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하고 빤스런하겠습니다. ㅠㅠ

2. Continental Europe Industrializes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이제 마침내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기가 18세기 후반인데 이때 유럽 대륙은 프랑스 혁명에다 나폴레옹 전쟁까지 겪고 있어 난리도 아니였기 때문에 산업혁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늦어졌지만 결국 산업혁명은 서서히 스며들게 됩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19세기 초반부터 유럽 대륙의 산업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유럽 대륙의 산업화도 미국과 비슷하게 산업스파이(...) 비슷한 사람들이 활약하게 됩니다. 벨기에 쪽에는 윌리엄 코커릴이란 사람이 영국에서 기계를 불법적으로 들여와 유럽 대륙에 산업혁명이 확산되는 기여를 하게 됩니다. 

유럽 대륙 쪽에서 가장 눈부신 산업혁명을 이루어낸 쪽은 바로 독일입니다. 원래 독일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초기만해도 나라가 산산히 갈라져 있기 때문에 산업화를 추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중반부터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정치적으로 통일의 기운을 타자 그것에 발 맞추어 산업화도 기지개를 펴게 됩니다. 

1840~1900까지 유럽 철도망의 길이를 그래프로 나타내었다. 독일과 러시아의 철도망 증가가 눈에 띈다.

독일은 영국보다 넓은 영토와 자원을 비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했습니다. 다만 정치적으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프로이센이 독일 여러 나라들 중 중심을 잡고 통일운동을 펴나가자 정치적으로 빠르게 안정되더니 1871년에 독일 통일이 달성되었습니다. 독일은 이 1800년대 후반에 완벽히 산업화의 궤도에 오르게 되더니 영국을 거의 추월하게 됩니다. 미국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왜 이렇게 산업화에 뒤쳐진 국가들이 산업화를 시작하자마자 빠르게 선진국을 추월하게 되었는 지는 두 가지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후발성 이득과 경로의존성입니다.

후발성 이득과 경로의존성의 예는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즉, 한강의 기적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후발성이득은 뒤쳐진 채 출발한 사람이 매우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먼저 출발한 사람의 경로를 보고 그 사람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압축적으로 경험하거나 혹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예시 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으나 앞선 선진국들의 산업화 사례를 보고 배워 굉장히 빠르게 산업화를 달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독일 역시 앞서 나간 영국의 산업화를 빨리 배웠기 때문에 영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경로 의존성은 일단 시작된 방향을 틀기가 어렵다는 건데 예를 들어 영국 같은 경우 일찍부터 산업화가 시작되어 가스등 인프라가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가스등이 처음 개발될 때는 그것이 좋은 것이었지만 뒤이어 전기등이 개발되었을 때는 이 가스등 인프라가 오히려 전기등을 보급하는 데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죠. 즉, 산업화를 하지 않아 아무것도 없는 나라가 더 빠르게 산업화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전쟁 이후 폐허 속에 다시 산업을 일으켰기 때문에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 2가지를 무기로 독일과 미국은 가파르게 산업화를 달성할 수 있었고 그 주변 나라 역시 빠르게 성장해나갑니다. 이처럼 혁명은 처음 시작은 어려우나 한번 시작되면 무서운 기세로 전파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3. Laissez-faire Economics

산업혁명이 전개되면서 그에 맞는 새로운 경제 이론이 나오게 됩니다. 산업혁명 이전에 유럽을 지배하던 사상은 중상주의였는데요. 중상주의는 강력한 보호무역을 표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보호무역을 행하던 16~17세기 유럽 경제 발전은 아메리카 대륙 착취에 기인한 것이어서 이렇다할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미칠듯한 인플레이션 현상인 가격혁명을 맞봐야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런 보호무역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서서히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당시 자유주의적 정치적 흐름을 경제에도 끌고 들어왔는데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면 시장은 알아서 잘 돌아가리라는 자유방임주의를 내세웠습니다. 사실 이 파트부터 역사보다는 경제에 훨씬 가까운 파트인데요. 좀 자신 없어서 수업말고 개학연기 기간에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망한 느낌... ㅠ 설명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그럼 자유 방임주의부터 봅시다.

자유방임주의의 어원은 정부는 걍 가만히 있으라는 거다. 사실 오늘날 자유방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거랑 별반 다를 바 없는 뜻이다.

Laissez-faire는 영어 같지가 않죠? 불어인데 대강 뜻이 걍 내비둬 정도 입니다. 직연하면 leave it alone 정도가 될거에요. 쉽게 말해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내비두라는 것입니다. 언어의 어원은 이런데 프랑스의 유명한 장관인 콜베르가 사업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하면 정부가 사업을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소?'라고 묻자 그걸 듣던 르 깡드르라는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패기 넘치는 대답을 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대체로 중상주의의 반대되는 위치에서 나왔기 때문에 중농주의자들 중에 자유방임주의자가 많았습니다.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의 대표인 애덤 스미스 역시 중농주의에 조금 더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이었죠. 애덤 스미스는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의 저작 국부론에는 한번 밖에는 언급이 안 됩니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의미는 시장 원리라기 보다는 개인의 이기적 경제활동 추구가 사회 전체 부의 증가와 연결된다는 의미로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뉘앙스입니다. 아무튼 이 얘기는 여기서 다룰 사안은 아니고 우리가 다룰 것은 애덤 스미스의 세 가지 원칙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경쟁은 인간에게 더 나은 상품을 만들도록 하고, 가격은 수요자를 만족 시키기 위한 가능한 최저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합리적인 수준의 설명이었고 오늘날에도 충분히 통하고 있습니다. 이런 스미스의 생각을 맬서스, 리카도와 같은 학자들이 더 발전시켰는데 이들을 고전 경제학자라고 부릅니다. 맬서스는 맬서스의 덫으로도 유명한 경제학자인데 인구 증가가 식량 증가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인구가 조정되고 전쟁이나 전염병이 일어나지 않아서 인구가 조정되지 않는다면 생계 유지 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비참한 상태에 이른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맬서스는 한발 더 나아가서 빈민층은 최대한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아니면 전쟁 한번 내서 억지로 인구를 조정해야(...) 한다는 신박한 이론을 냈는데 도덕적인 내용은 차지하고서라도 당시에는 슬프게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맬서스의 덫이 깨진지 오래였지만 실제로 1840년대까지만 보면 맬서스의 말이 상당히 현실성이 있었습니다.

리카도는 맬서스의 이론을 한 발 더 발전시킵니다. 이 사람은 비교우위, 노동가치설로 유명한 사람인데 우리 교과서에서는 그거보다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리카도는 하층민 노동자는 영원히 가난할 것이다라는 이론을 만들었는데 그 이론에 따르면 만약 인구가 적다면 노동자는 생활 수준이 향상되어 인구가 증가되게 될 것입니다. 인구가 증가 되면 자연스럽게 임금은 하락되겠죠.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이 안 좋아져서 다시 인구는 감소하고 이렇게 되면 임금이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리카도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임금의 변동은 있어도 결국은 노동자의 자연가격(노동자가 삶을 영위하는 최저 수준의 소득)에 맞춰진다는 것이였습니다. 뭐 얼핏 생각하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지요. 이처럼 고전경제학파들은 인구에 주목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고 맬서스처럼 하층민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발언을 쏟아내다보니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이즈음 자유방임주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이 나오는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더니 몇몇 큰 기업들이 가격을 담합하여 건강한 시장을 파괴하거나 독과점이 일어나는 형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몇몇 자본가들만이 이런 상황에서 부를 착취했고 빈부격차는 이제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장을 내버려두면 안 되는 상황이 왔고 노동자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이때 자유방임주의를 비판하고 나온 사상이 바로 사회주의입니다.

4. The Rise of Socialism

처음에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나온 것은 공리주의였습니다. 벤담, 밀과 같은 사람들인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한 번쯤 들어본 말이죠? 결국 이들은 많은 수의 사람이 행복을 누리려면 정부가 개입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소수의 독점 자본주의는 이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 시작된 것이죠. 공리주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사회주의입니다.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을 목격한 오웬 같은 사람은 뉴 라나크, 뉴 하모니와 같이 협동 조합을 만들어 아동의 노동을 금지시키고 대신 교육을 하여 이상적인 형태로 부를 재분배하려고 했습니다. 푸리에, 생시몽 같은 사람들도 이런 생각에 동의했는데요. 그들은 이런 빈부격차의 문제점이 몇몇 소수자의 부의 독점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자유시장 의존하기 보다는 경제를 계획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들은 공장, 광산, 철도 및 기타 주요 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빈곤을 종식시키고 평등을 촉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주요 산업이나 부의 생산수단을 공공의 품으로 귀속 시키냐? 인간은 착하니까 잘 설득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겁니다. 음, 말이 안되죠.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은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고 이때까지 저랑 역사 배웠으면 아실테지만 수많은 전쟁들이 별 시덥잖은 이유로도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들의 믿음은 순진함을 넘어 어리석어까지 보였습니다. 이러던 차에 진짜 사회주의라고 부를만한 것이 등장합니다.

5. Marxism: Radical Socialism

이제 본격적으로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갑자기 사회주의에 대해 설명하려니까 묘한 긴장감이 감도네요? 으어어어....

판사님 이 뒷부분은 저희집 고양이이자 사회주의 전문가 마르크스가 작성했습니다!

이 뒷페이지는 저희 집 고양이(다들 아시죠? ㅋㅋ) 마르크스가 작성한 걸로 하겠습니다. 요즘은 저희 애 때문에 격리되서 본가로 가 있는데 이 파트를 설명한다하니 득달이 같이 달려왔네요 ㅋㅋㅋ 자 마르크스는 이 위에 사회주의자들을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정리하면서 인간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로 정의했는데요. 그러면서 현재 자본주의의 상황은 유산자(가진자)인 브르주아와 무산자(못 가진자)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으로 보았습니다. 브르주아는 자신이 소유한 생산수단을 내놓지 않을 겁니다. 결국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요원한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어떻게하긴 뭘 어떻게 해요 폭력으로 뺏는다는 겁니다. 이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유산자 계급에 대해 무산자 계급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바로 단결이라고 본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한 유명한 말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탄생된 거죠. 여기서 앞에 말인 만국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노동자만 단결한다고 해서 이 문제(빈부격차)가 풀리지 않거든요. 만약에 국내 노동자들이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러면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게 되고 이러면 자본가 vs 노동자의 싸움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 vs 내국인 노동자의 싸움으로 번지죠. 만약 자본가가 공장을 이전해도 마찬가지 양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지만 빈부격차가 해소된다고 봤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생산수단을 몰수하면 그때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시작되어 생산수단이 완전히 사회화 되고 경제적으로 평등해질 때까지 정부가 사회를 통제하는 겁니다. 그리고 완전한 경제적 평등이 달성되면 자연스래 정부의 역할이 희미해져 계급없는 사회가 달성되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지는 완전한 공산사회가 달성될 것이라 보았습니다. 

마르크스가 작성한 짧은 문서인 공산당 선언에는 공산주의의 핵심이 담겨 있었고 그 파급력은 전 유럽뿐만 아니라 이후에 전 세계까지 뻣어 나갑니다. 실제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을 탄생시키기도 하죠. 하지만 마르크스 살아 생전에는 크게 사회주의가 기를 펴지는 못합니다. 1848년,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곳곳에서 혁명이 시작되었으나 완전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고 프랑스에 들어선 파리 꼬뮌도 마르크스가 생각한 공산주의하고는 모습이 달랐습니다. 만국의 노동자 단결을 위해 창설된 단체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무정부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서로 뒤엉켜 주도권 다툼만 하다 1876년에 해산되고 맙니다. 그 후에 인터내셔널이 다시 들어서긴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미 죽은 이후였죠. 그러나 마르크스의 주장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단결이 유일한 무기임을 깨달은 노동자들은 서서히 자신들만의 조직을 갖추게 됩니다.

6. Labor Unions and Reform Laws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들은 마르크스의 말처럼 단결하기로 결심하는데 이른바 노조의 탄생입니다. 처음에 탄생된 노조는 숙련공 중심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숙련공들은 대체하기 힘든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고가 쉽지 않아 높은 협상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노조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정부는 사실상 노조의 단체 행동을 인정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노조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1799년에 단결금지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단체 행동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암암리에 노조에 가입하면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영국은 1824년에 단결금지법을 폐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1886년 AFL(미국노동자연맹)이 헤이마켓 사건으로 결성되게 됩니다. 사실 미국은 AFL 이전에 노동기사단이라는 상당히 급진적인 단체가 노동운동을 주도하게 되는 데 헤이마켓 사건도 이들 주도로 일어나게 됩니다. 헤이마켓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간략히 말하면 8시간 노동을 위한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했고 이후에 일어난 시위에서 노동자 측에서 경찰을 향해 폭탄을 던지면서 시위가 겉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결국 이 운동을 주도한 지도부가 체포되는데 증거불충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형 판결을 받으면서 이후 세계적으로 노동운동이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정작 미국은 이런 과격한 시위를 본 이후로 점차 노조가 온건한 성향으로 변했고 이전에만 해도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정치 조직이 있었으나 지금은 진보라고 해봤자 온건한 민주당이 좌파 쪽 입장을 대변하는 미국 정치지형을 변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뭐 그건 나중에 미국사 얘기할 시간이 있으면 더 자세하게 다루고 싶지만 개학 연기로 시간이 없... ㅠㅠ

세계 노동운동의 큰 전환점을 준 헤이마켓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난 5월 1일이 바로 노동절이다

아무튼 노동자들이 단결하기 시작하자 정부와 자본가들도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을 해서 무분별한 자본가들을 규제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에서 1820년대와 1830년대에 공장과 광산에서 아동 노동과 노동 조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의회는 1833년 공장법을 통과시켰는데요. 이 법에 따르면 9세 이하의 아이들을 고용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예전에는 9세 이하의 아이들도 고용했다는 끔찍한 얘기겠죠. 실제로 이 기간에 조사되었던 사례들이 사료로 남아있어 산업혁명기 끔찍했던 노동사태를 우리가 접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또 다른 제약은 9세에서 12세 사이의 아이들은 하루에 8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3세에서 17세 사이의 젊은이들은 12시간 이상 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1842년 광산법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지하에서 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1847년에는 10시간법 제정되어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근무 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했죠.

미국도 아동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1904년에는 전국 아동 노동위원회를 조직되었습니다. 이들은 정치인들에게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최대 노동 시간을 정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후 각 주들은 여성의 노동 시간과 나중에 남성의 노동 시간을 제한할 수 있게 되었죠. 개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에 유럽과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고 여성 인권이 신장되는 등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인권도 개선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호레이스만 같은 경우 아동의 공교육을 주장했고 토크빌 같은 경우 교도소의 인권 향상을 주장했습니다. 죄지은 사람이 무슨 인권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죄수들을 사회에 적응시켜 재범율을 낮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납득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아무튼 산업화 속에서 인권이 서서히 전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이것으로 산업혁명 파트는 종료가 되었는데 사실 역사라기 보다는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적 관점에서 같이 봐야될 사건이 많습니다. 이후에 조금 더 깊이 공부하실 생각이라면 다양한 관점에서 산업혁명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pecial Question

- 만국의 노동자는 왜 단결하지 못하였는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데 한번 쯤은 얘기해보고 싶어 선정했습니다. 팀즈에서 토론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Posted by Avil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