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동아시아의 변화와 조선의 근대 개혁 운동
2) 개황과 불평등 조약 체제
2-1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다
2-2 서양 열강에도 문호를 열다

따라쟁이 일본, 서양의 포함외교를 따라하여 조선의 문을 열다

일본하면 모방을 잘하는 나라로 어느 새인가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은 서양에게 자신들이 굴욕적으로 개국을 한 사건을 잊지않고 그대로 조선에게 행했으니 이를 운요호 사건이라 합니다.

<운요호의 모습, 일본은 자신들이 미국에게 당한 것과 똑같은 행동을 조선에 선보인다>

운요호 사건은 일본이 조선을 개국하기 위해 일으킨 일종의 무력시위였는데요. 그렇다면 일본은 왜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려 했을까요?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주장한 일본의 주권선과 이익선>

여러분들은 일본을 제국주의 열강에 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겠지만 사실 조선을 개국시킬 당시 일본은 그런 자신감은 없었습니다. 이들은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독립을 지켜나갈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정치가였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일본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선 일본의 주권이 미치는 주권선만 지킬 것이 아니라 일본 독립과 존망에 관계는 되는 주권선 밖의 이익선까지 지켜야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당시 이익선은 조선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고 일본은 조선이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거나 보호국 상태로 전락하는 상태를 두려워했습니다. 조선이 곧 열강의 식민지나 보호국이 되면 자신의 독립이 위험해지기 때문이었죠. 따라서 어떻게든 조선을 중립국으로 놔두거나 일본 자신이 조선에서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서구 열강이 조선에 개입해서 강제로 조선을 개항시키기 전에 일본이 미리 개입해서 조선을 개항시켰던 것이죠.

그렇다면 순전히 일본의 의지에 의해서만 조선이 개국되었던 걸까요?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조선은 쇄국정책을 쓰던 흥선대원군은 뒤로 물러가고 고종이 직접 정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고종 밑에 많은 개화파가 일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었던 박규수가 하루빨리 개화를 하여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펴고 있었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그는 북학론의 학맥을 이어받고 개화를 주장했다>

따라서 일본의 사정과 조선의 사정이 맞아 떨어지면서 개국에 대한 협상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운요호 사건이 일어난지 1년 뒤인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이 체결됩니다.

조선, 청과 일본 사이에서 끼인 존재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최초의 근대 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렇다면 한, 중, 일 삼국이 어떤 시기 누구에 의해서 근대적 조약을 맺게 되었는지 한 번 알아볼까요?

 

조약 체결 시기

조약 체결 상대

1842년 난징조약

영국

일본

1854년 미일화친조약

미국

조선

1876년 강화도조약

일본

<한, 중, 일 삼국의 근대 조약 체결 시기와 상대 국가>

이 표를 보고 뭔가 느껴지시는게 없나요? 보면 조선에 특이한 점이 2가지 발견됩니다. 하나는 조약 체결 상대가 서구 열강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점, 두 번째는 청과 일본 보다 20~30년 늦게 근대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점이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조선이 처한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조선은 어떻게 보면 서양 열강들에게 별로 주목받는 국가는 아니였습니다. (러시아는 제외입니다. 그들은 얼지않은 항구가 필요했으니까 조선이 꼭 필요했지요) 하지만 이제 서양 열강의 침입의 위협을 받고 있던 청과 일본에게는 조선은 매우 중요한 나라였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이익선에 넣어 자신들의 독립을 지키려고 했고 청나라는 서양에게 패배한 설욕을 갚고 자신들도 열강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조공국이었던 조선을 식민지로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조선은 서양 열강이 아닌 이웃 나라였던 일본에 의해 개국되었으며 개국 시기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늦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조선이 자주 독립국이라고? 독립국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라!

자, 이제 본격적으로 조선 최초의 근대 조약인 강화도 조약의 세부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강화도 조약에 첫번 째 조항에 보면 조선국은 자주의 나라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말 조선을 기만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선국은 자주의 나라라는 조항은 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조항에 불과했고 나머지 조항들은 온통 조선에게 불리한 것들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수출입 상품에 대한 관세도 전혀 없었습니다. 이는 당시 신흥 공업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던 일본과 다르게 산업화가 전혀되지 않은 조선에게는 치명타였습니다. 또한 치외법권이 인정되었고 일본의 조선 해안에 대한 측량권도 그대로 용인되었으니 이걸 평등한 조약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조선책략, 조선의 외교 방향을 결정하다

조선이 일본과 통상 조약을 체결하고 나서도 조선은 막 바로 다른 서양 열강과 조약을 체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과 조약을 체결한 것은 과거 전통적인 일본과의 교역관계를 회복한 것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전히 다른 서양 열강들과의 조약체결을 꺼려했는데 서양 열강과 조약 체결에 불을 당기게 만든 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조선 책략입니다.

<황쭌셴의 조선책략, 당연하게도 한자로 써있다^^;>

조선책략에서는 러시아를 잠정적인 적국으로 설정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이 취해야할 방책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 방책은 연미(미국과 연합하고), 결일(일본과 맺고), 친중(중국과 친하라) 것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결일과 친중은 이미 충족이 되어 있었죠. 일본하고 얼마전에 강화도 조약을 맺었으니 되었고 중국이야 수백년 동안 친분 관계를 유지했으니 남은 것은 미국과 연합하는 것만이 있었습니다.

<영남만인소, 미국과 연합하는 것에 대한 유생들의 반대의 목소리다>

이에 유생들이 크게 반발하여 이만손을 중심으로 영남만인소를 올리기도 했지만 미국과 수교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미국과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는 청의 소개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청은 당시 일본에게 조선의 주도권을 뺏길 것 같아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청은 미국을 소개해주면서 조선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미국과 조약 체결을 순조롭게 이루어져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조약 내용은 우리에게 유리했던 관세 부과 조항 등이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치외 법권, 최혜국 대우 등이 있었기 때문에 불평등 조약이라는 사실은 다름이 없었습니다.

조선이 미국과 수교하자 뒤이어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의 서구 열강들과 본격적으로 조약을 체결했으며 기본적으로 전부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특히 러시아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들은 청나라가 조선과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알선하였는데 이것은 다른 서구 열강들에게 청이 조선이 자신의 보호국임을 주장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던 것이었습니다.
Posted by Av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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