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동아시아의 변화와 조선의 근대 개혁 운동
5) 열강의 경제 침탈이 가속화되다
5-1 일본과 청 상인의 경제 침투
5-2 청과 일본의 경제 침탈에 맞서다 


개항으로 외세의 경제 침탈이 심화되다


개항 이후 조선은 본격적으로 세계 자본주의 시장체제에 편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개항 과정이 폭력적이고 조선에서 준비도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외국과 체결한 조약이 모두 불평등조약이어서 조선의 취약한 경제 상태가 그대로 열강 앞에 노출되어 있었지요. 

특히 일본과 청은 조선의 경제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일본은 강화도 조약의 유리한 조항 내용을 이용하여 조선 경제를 적극적으로 잠식해나갔습니다. 급격한 공업화를 하느라 농업이 몰락했던 일본은 쌀이 많이 부족했는데 주로 쌀과 잡곡, 콩을 많이 수입했습니다. 조선에 주로 수출했던 제품은 주로 영국산 면제품이었습니다. 일본은 영국산 면제품을 중국에서 싼 값에 사들여 조선에는 비싼 값에 팔아 그 대금으로 쌀과 잡곡, 콩을 수입하는 형태였습니다. 이것을 미, 면 교환체제라고 부릅니다. 

<인천항에서 수출되는 쌀, 일본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조선쌀 수입에 열을 올렸다>

일본은 이런 무역을 하면서 일본 화폐를 사용하고 수출입 상품에 관세를 매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치외법권 마저 적용되면서 약탈에 가까운 무역 활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농촌 면공업은 거의 몰락했으며 쌀값은 폭등했습니다. 쌀값 폭등으로 인해 지주 계층은 더 큰 이익을 거두기도 했지만 대다수 농민은 몰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인 계층도 일본 상인의 진출로 말미암아 몰락했는데 그 중 일부는 일본 상인이 개항 초기에 개항장에서만 무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하여 일본 상인 대신 내륙에 물건을 팔아줌으로써 부를 축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청나라는 어땠을까요? 청은 조선이 개항하던 초기에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임오군란 이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면서 조선 내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청수륙무역장정에는 청나라 상인들은 정부에가만 받으면 개항장 밖에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조약이 있었기 때문에 청나라 상인들은 개항장을 넘어 내륙까지 적극적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시죠? 다른 나라들은 모두 최혜국 조항이 있었다는 것을요. 이후 다른 나라들도 최혜국 대우 조항에 의해 내륙 진출을 시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륙과 개항장을 연결해주던 중개상인들은 몰락헀습니다.

<청과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액>

위 그래프를 보면 청나라가 1882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맺은 이후 꾸준히 조선에서 영향력을 확대해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나라 상인들의 세력이 확대해 나가자 일본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조선에서 청나라 상인의 세력 확장 때문에 나중에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청일전쟁입니다.

한편 조선 정부는 계속 손해를 보는 무역 체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무관세 규정을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1883년 조일통상장정에서 관세권이 설정되고 쌀의 무제한 수출을 막는 방곡령 선포등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주는 게 있으면 잃는 법도 있는 법. 일본의 요구로 최혜국 대우 조항이 들어가고 맙니다.

경제 침탈을 막기 위한 노력

그렇다면 조선은 외국 상인들의 경제적 침탈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을까요? 그건 아니었습니다. 외국 자본에 대항하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외국 상인들의 막대한 자본과 경쟁하기 위해 조선의 상인들은 동업자들을 모아 자본의 규모를 불려 상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 중 대동상회는 꽤 큰 규모의 회사로 발전하여 해외 무역에도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부에서는 일본의 경제 침탈에 맞서 세곡을 효율적으로 운반하기 위해 증기선을 구입하기도 하고 해운 회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일본 자본에 잠식되는 슬픈 현실을 맞이하긴 하지만요 ^^;

<광제호의 모습>

이외에도 일본 상인들이 무분별하게 곡물을 사가는 행위를 막기 위해 방곡령이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방곡령이란 곡식이 나가는 걸 금지한다는 뜻으로 일본이 제한 없이 쌀을 수입해가는 걸 방지하는 법령이었습니다. 처음에 방곡령이 일어난 곳은 함경도로 당시 함경도 관찰사인 조병식이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선포하는 것 까지는 매우매우 좋았는데 일본이 또 다시 트집을 잡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방곡령 통보를 늦게 받았다는 구실을 달아 조선 정부에 압력을 가해 배상금을 받아내는 행위를 저지릅니다-_- 나쁜 놈들이죠?

이외에도 청, 일본 상인들의 상권 확대에 맞서 시전 상인이 철시 운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우리 상권을 수호하려 노력했습니다. 이후 시전 상인들은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해서 상권 수호 운동을 더욱 발전시켜나갔습니다.

Posted by Av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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