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세계사 수강생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과목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한글패치 하는 법을 알려드리곘습니다 하하...

유승균 학생이 인트라넷에도 (https://hi.hana.hs.kr/SYSTEM_Community/Board/Student_Board/student.asp?mode=view&bbs_idx=16319&code=0603) 글을 올렸는데 저는 라이브러리에 직접 추가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유승균 학생 방법은 직접 설치하는 것이라 간단한데 대신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재설치해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저는 스팀에서 구독하는 방법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방법은 업데이트가 있어도 별도의 재설치는 필요 없습니다.

1. 스팀 계정에 접속

스티 접속 후 라이브러리->CK2선택->창작마당 클릭

2. 창작마당에 접속

검색창에 Korean 입력 후 검색 -> 유로파 카페에서 만든 두 가지 한글패치 클릭(먼저 가운데 것을 클릭하여 구독한 후 뒤에 에드온이라고 붙은 것을 클릭하면 됩니다)

3. 한글 패치 구독

한글패치를 클릭 후 구독 버튼을 클릭

4. 두 가지 패치 모두 구독 후 게임 실행

Mod 버튼을 클릭 후 오른쪽 작은 상자를 체크 후 실행 후 종료(이때 바로 패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재실행해야 한글패치가 시행되니 한글패치 안 되었다고 당황하지 마세요!)

5. 다시 재실행 후 한글패치 모드 체크

게임을 종료 한 후 재실행 하면 모드창에 한글패치 두 가지를 체크할 수 있는 버튼이 뜬다. 모두 체크 후 게임 플레이!

번외편

하도 어렵다는 얘기가 있어 먼저 공략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카페를 공개합니다. 다음카페 유로파(http://cafe.daum.net/Europa) 링크를 걸어드립니다. 인트라넷에도 제가 올려드린 카페입니다.

두번째는 초보자 입문 가이드 영상입니다. 이 유튜버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sS8PWWyYx9hALgMvRnMzsTwFLiEUjMuV

 

크루세이더 킹즈 2 초보자 입문가이드 | 실전압축공략 FINAL - YouTube

► 크루세이더 킹즈2 의 아마도 마지막(!) 초보자 입문 공략이 될듯 합니다. ► 버전 3.3 ► 영상이 마음에 드시면 좋아요! 를 눌러주세요. ► 구독 - http://goo.gl/4acrAH ► 후원 - http://twip.kr/donate/bigqid13 ► 트위치 - ht...

www.youtube.com

그럼 모두 즐거운 수행평가 되시길! Deus Vult!

Posted by Av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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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SETTING THE STAGE

이 부분은 대항해시대로 표현되는 유럽의 지리상의 대발견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파트를 설명하면 괜히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왜냐고요? 바로 아래를 보시죠.

역덕들의 시간을 잡아먹었던 갓겜 대항해시대4, 이 일러스트는 하이레딘 발바로사이다.

많은 초, 중학생들이 세계지도를 알고 도시 이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던 갓겜 대항해시대가 바로 오늘 설명하는 이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항해시대는 코에이(돈에이, 내 돈 ㅠㅠ)에서 제작된 게임으로 사실 역사적 고증은 안드로메다로 가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흡입력이 대단해 저도 이 게임하느라 날밤새서 아프다고 핑계대고 학교를 안(...) 간적도 있는데 그만큼 유럽의 지리상의 발견은 많은 미디어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로 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시대로 묘사되는 이 시기가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것만큼 행복한 시대였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1. For “God, Glory, and Gold”

유럽 지리상의 발견에 가장 큰 동기는 바로 돈이었습니다. 뭐 새삼스러울게 있나요. 예나지금이나 인간의 재물욕은 엄청나서 하나뿐인 목숨을 걸기도 했지요.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은 동방의 신기한 향신료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역사를 바꾼 향신료가 바로 후추입니다. 후추는 같은 무게의 금으로 거래될 만큼 어마어마한 향신료였습니다. 예전에는 유럽사람들이 고기를 저장하기 위해 후추가 필요했다고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같은 무게의 금으로 거래될 만큼 귀한 후추를 고기 저장에 사용했다면 고기가 금보다 비싸다는 얘기가 되겠죠? 실제로는 저장 용도보다는 내가 이만큼 재력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플렉스죠(...) 중세 요리를 보면 이런 경향을 눈여겨 볼 수 있습니다. 최초의 요리사라고도 알려진 프랑스의 기욤 티렐(타이유방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이 남긴 요리책 Le Viandier를 보면 중세 요리의 특징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요리는 색을 중요시하여 염료를 쓰질 않나(...) 음식 재료와 금을 바른다거나(...) 아무튼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어마어마한 향신료 사용법이었는데요. 그만큼 귀족들 사이에서 동방에서 건너온 향신료, 특히 후추는 일종의 과시용으로 요리에 자주 쓰였습니다. 이제 유럽에서는 후추가 그야말로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이 후추를 북이탈리아 도시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들여왔습니다. 이들의 주된 무역루트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동방의 인도와 유럽을 이어주는 중개무역을 했습니다.

중세 유럽 상업, 북 이탈리아 도시가 지중해를 중심으로 동방의 향신료를 들여온다.

이 중세 유럽 무역은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던 11세기에 눈을 뜨기 시작해 십자군 전쟁이 최종적으로 패퇴한 13세기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행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5~16세기 새로운 제국의 출현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오스만 제국의 등장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팽창 과정, 13세기에 보잘것 없던 소국이 16세기에는 대제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오스만 제국은 소아시아 반도에서 성장한 작은 국가였는데 15세기에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급격한 팽창을 이루게 됩니다.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동지중해 일대가 사실상 오스만의 제해권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북이탈리아 도시였던 베네치아가 오스만에 타협도 하고 저항도 했지만 결국 그 세력이 줄어들어 그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게 되자 중개 무역이 서서히 쇠퇴하게 됩니다. 물론 이유는 그것뿐만은 아니였습니다. 중개무역이 쇠퇴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이탈리아 상인들의 독과점 때문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후추를 들여오자 다른 유럽 국가들이 이렇게 된 바에야 직접 구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종교에 있습니다. 한창 십자군 전쟁이던 1145년 독일 역사가 오토는 동방의 사제왕 요한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야기인 즉슨 정통 기독교도는 아니지만(네스토리우스교) 어쨌든 기독교도인 세례명 요한인 왕이 예루살렘의 교회를 돕기 위해 진군했는데 그 군세가 대단해 페르시아 지역에 그 위세가 진동하고 그를 막으려 했던 이교도들은 대패했다는 이야기다. 티그리스강에 다다랐을 때 배가 없어 철수했다는 이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가 십자군 전쟁의 주요 거점이었던 에데사를 잃었던 유럽인들에게는 한줄기 희망이 되었습니다. 실제 이 사제왕 요한은 가공의 인물인 것을 이제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습니다. 동방에 크리스트교가 퍼지긴 하였으나 강력한 군대를 가진 기독교 왕국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네스토리우스교의 동방 기독교 전파가 와전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 이야기는 십자군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가 언급될 만큼 유럽인들을 바다로 이끌었던 강력한 동기 중 하나였습니다. 

대항해시대의 마지막 이유는 바로 기술의 발전인데요. 동기가 있음 뭐합니까? 바다에 나가면 바로 꼬르륵인데(...) 13세기유럽의 바다를 주름잡았던 것은 갤리선으로 노를 저어 항해를 하는 배입니다. 이것은 먼 바다 항해에는 적합하지 않은 배였습니다. 14세기가 되자 좀 더 개량된 배가 나오는데 캐러벨이라는 배입니다. 이 캐러벨에는 삼각돛이 달려있는데 이 삼각돛이야 말로 바람을 거슬러가는 항해를 가능하게 해준 물건입니다. 캐러벨의 도입으로 드디어 유럽은 먼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콜럼버스의 항해에 사용되었던 두 캐러벨 선(핀타, 니냐호)

또한 천문관측 기구인 아스트롤라베(astrolabe)와 중국에서 도입된 나침반이 배의 위치를 알려주어 보다 안전한 항해가 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뭐 거창하게 말은 했지만 실제로 유럽의 원양항해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고 얘기했던가요? 유럽인들은 끊임없는 도전은 미미한 시작과는 달리 엄청난 성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2. Portugal Leads the Way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이끈 나라는 바로 포르투갈입니다. 보통 해양왕국하면 영국을 생각할텐데 지도를 놓고 보면 대서양으로 가는 출입구는 사실 이베리아 반도가 더 타당하고 이베리아 반도 중에 가장 서쪽에 위치한 포르투갈이 바다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13세기 포르투갈은 이미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을 완전히 내쫓는데 성공합니다. (1249년) 1492년에 걸려서야 레콩키스타가 완수되는 에스파냐와 비교한다면 약 250년이나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지중해로의 진출은 일찌감치 에스파냐에 의해 차단당해 포르투갈이 영토를 늘리려면 아프리카를 공략하거나 서쪽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에겐 서쪽이나 아프리카나 모두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이 미지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것인 항해 왕자 엔히끄입니다. 엔히끄는 1415년 아프리카 도시 세우타를 점령한 것을 계기로 아프리카 서부 해안가를 탐험대를 적극적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로써 유럽인들에게는 괴물이나 사는 곳이었던 아프리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들어오게 되고 항해 학교를 세우면서 이후 대항해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인재를 양성하게 됩니다.

엔히끄의 후원 아래 탐험하게 된 루트, 실제로 엔히끄는 리스본을 벗어난 적이 없다.

엔히끄가 뿌린 씨앗은 그의 사후 비로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1488년 바톨로우메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을 발견함으로써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에 이르는 직접 항로 개척이 가능함을 알렸으며 1498년에는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최남단을 돌아 인도에 직접이르게 됩니다. 이로써 유럽인이 오래도록 꿈꿔왔던 인도로 가는 직접 항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3. Spain Also Makes Claims

포르투갈이 이렇게 동쪽으로 가는 항로 개척에 앞서가고 있을 무렵 옆에 에스파냐도 대항해시대에 참가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포르투갈과는 달리 1492년까지 무슬림 세력과 싸우느라 바다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던 에스파냐에게 그라나다가 함락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무슬림 지배를 종식되면서 드디어 여유가 생깁니다. 이런 에스파냐를 찾아온 한 남자가 크리스토발 콜론(이탈리아어 크리스토포로 콜롬버, 영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었습니다. 이 남자는 어딘가 좀 모자란 구석이 있었는데 당연히 동쪽에 있는 인도를 서쪽으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콜럼버스가 지구가 둥그니까 서쪽으로 가도 인도에 다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고 아무도 안 믿었는데 에스파냐가 운 좋게 믿어서 성공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혀 역사적 사실과 다릅니다. 콜럼버스는 수포자로(문과가 또) 직선으로 15000km 달하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거리를 3700km로 줄여서 계산하여(...) 서쪽으로 가면 동쪽으로 가는 것보다 더 빨리갈수 있다는 헛소리를 했습니다. 사실 포르투갈의 적극적인 항해로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상식이었고 많은 항해 지식이 집적되어 있었던 포르투갈은 올바른 지구 둘레 거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가 에스파냐보다 먼저 포르투갈을 찾아 자신이 서쪽 항로로 인도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이 인간이 사기꾼(...)임을 깨닫고 쫓아낸 것이죠. 에스파냐도 이 인간이 심히 사기꾼스럽지만 밑져야 본전이다라고 생각해 베팅한 게 대박이 터진 셈이 됩니다. 즉, 콜럼버스의 향해는 아메리카 대륙이 없었다면 원래 바다 한 가운데서 굶어죽을 운명이었던 것인데 우연인지 기적인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함으로써 기사회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우습게 된 쪽은 포르투갈이었습니다. 콜럼버스를 시원하게 무시했었는데 그가 인도에 이르는 서쪽 항로를 발견해버리니 당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1492년에는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최남단을 도는 항로는 뚫은 상태이나 인도에 이르는 항로는 아직 개척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에스파냐가 서쪽으로 인도에 다다랐다고 주장하니 그 동안 공들인 인도 항로가 날아가게 생겼던 것입니다. 포르투갈은 재빨리 인도에 대한 선제 점유권을 주장하면서 콜럼버스가 진짜 인도에 다다른 것인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년간 항해 지식의 축적으로 포르투갈은 콜럼버스가 실제로 인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고 어쩌면 그가 발견한 곳이 새로운 대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 이유가 뭐가 됐던 간에 이제 동쪽으로 향하는 항로는 포르투갈이 서쪽으로 향하는 항로는 에스파냐가 앞장 서서 개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양 국가 간에 묘한 라이벌구도가 형성되서 어디까지가 우리 땅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두 국가의 싸움을 종식시켜 준 사람이 바로 교황입니다. 교황이 1494년 지구에 가상의 경계선을 그어 그 경계선 동쪽은 포르투갈이 서쪽은 에스파냐가 차지한다는 기상천외한 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게 그 유명한 토르테시야스 조약입니다. (대항해시대3를 해봤다면 잊을 수가 없는 악덕 조약-_-) 

왼쪽 가상의 경계가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의해 그어진 경계선, 오른쪽은 사라고사 조약에 의해 그어진 경계선이다. 솔직히 이게 뭔짓인가 싶다.

이 조약으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지구를 양분(...)하는 비범함을 보여줍니다. 뭐 실제로는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가의 도시와 인도 도시 일부를 점으로 지배하는 것에 불과했고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여 청동기에 의존하고 있던 아메리카 토착 문명(아즈텍, 잉카 등)을 점령하는 로또를 맞아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바야흐로 에스파냐는 해상 제국을 이루게 됩니다.

4. Trading Empires in the Indian Ocean

에스파냐가 해상 제국을 이루고 있는 동안 포르투갈도 가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에스파냐 보다 넓은 영역을 차지하지는 못하였으나 인도양으로 이르는 주요한 거점인 호르무즈, 인도의 주요 도시인 고아와 캘리컷, 말라카 해협에 위치한 말라카를 점령하여 인도양으로 이르는 길목을 포르투갈이 본격적으로 통제하게 됩니다. 이때 유럽인들은 배에 대포를 싣는다는기발한(?) 발상으로 이 지역을 주름잡았던 이슬람 상인들을 밀어내게 됩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기세가 서서히 위축됩니다. 결정적으로 포르투갈은 1580년 ~ 1640년까지 에스파냐에 합병 되면서 해외 식민지의 통제력을 잃었고 에스파냐는 1581년에 유럽 지역 자신의 영지였던 네덜란드가 독립하고 1588년 칼레 해전을 통해 영국에게 자랑하던 무적함대가 대패하게 됨으로써 해상 왕국으로서의 위세가 꺾이게 됩니다. 그 빈곳을 비집고 들어간 나라가 영국과 네덜란드입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각각 동인도 회사를 세워 식민지 경영에 나섰으며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인도네시아 경영에 집중하면서 포르투갈의 빈자리를 빠르게 메꾸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을 너무 크게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이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고는 유라시아 대륙 쪽은 이들의 지배가 항구에 머물렀으며 내륙까지 퍼지는 것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결국 대항해시대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아직 청동기 단계이고 유라시아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던 아메리카를 유럽이 먼저 발견한 것이며 이를 통해 유럽은 본격적인 부상을 할 수 있게된 것입니다. 콜럼버스의 계산 실수가 세계를 뒤 바꾼 셈이 된 것이죠.

Special Question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후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Posted by Av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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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dustrialization in the United States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주변 나라로 퍼지게 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면 그것을 감추고 숨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여서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방직기, 방적기 기술을 은폐하려 노력하였는데 감춘다고 감춰지나요? 결국 다른 나라로 산업혁명의 기술이 조금씩 흘러들어가면서 산업혁명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산업혁명 후발 주자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때 당시만 해도 아주 운이 좋게 독립한 신생국으로 유럽에 비하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국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지금과는 매치가 안 되서 어리둥절하실 수도 있지만 실상이 그랬습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게 여러 원인이 있지만 이 산업혁명 덕분이라는 걸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국 산업혁명의 아버지이자 배반자 슬레이터라고 불리는 새뮤엘 슬레이터

사진에 나온 분은 새뮤엘 슬레이터인데 미국에서는 미국 산업혁명 시스템을 이끈 아버지로 평가 받지만 영국에서는 배반자(the Traitor)라고 불립니다. 그도 그럴것이 수력 방적기 기술을 미국으로 가져 갔거든요. 뭐 솔직히 지금 관점으로 보자면 산업 스파이...(그것도 국가 핵심기술)인데 저런 호칭이 붙은 것도 이해는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술을 새뮤얼 슬레이터만 가져갔냐 하면 또 그건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은 이때 막 독립한 신생국이었고 영국이랑 같은 언어를 공유했습니다. 지어 이때는 막 독립한 때라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도 분화가 되기 이전이라 더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모호한 점 때문에 많은 영국인들이 미국에 건너가서 새로운 부의 창출을 꿈꾸었고 이들이 미국 산업화에 큰 이바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한 나라였다가 떨어져 나온 것이 미국에는 행운이 된 셈입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미국의 아주 폭발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미국의 산업화 조건은 영국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영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광대한 토지와 자원이 있었고 막대한 미개척 지대를 개척해나가면서 미국의 산업은 그야 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이런 미국의 성장세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철도입니다.

1913년 철도의 길이, 미국의 엄청난 철도 길이에 놀랄 수 밖에 없다.

그래프에서 보시는 것처럼 미국은 1913년 전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아니 전 세계의 철도망을 합쳐도 상대가 될만한 철도 체제를 구축합니다. 제가 앞선 시간에 철도야 말로 산업혁명의 총아라고 말씀드렸는데 산업혁명 후발주자였던 미국이 이제는 당당히 초일류 국가로 들어선 것을 철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통계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1인당 소득이나 산업화 수준도 1900년 초반 대면 이미 영국을 넘어서게 됩니다. 영국의 아성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미국의 문제였던 남북갈등도 1865년 남북전쟁 종결로 봉합되자 미국은 날개를 단 셈이 되었습니다. 대체로 1800년대 후반이 되면 내전에 쏟았던 에너지를 산업화에 쏟으면서 미국은 당당히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시점에 미국이 폭발적으로 철도를 확장하게 된 것은 주식회사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철도 같은 기간 사업은 당장에 들어갈 돈이 많기 때문에 쉽사리 사업에 손을 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주식인데 회사 권리의 일부를 주식이라는 형태로 팔아서 주식을 산 사람들에게 회사의 이익을 배당해주고 대신 자본금을 얻는 형태였죠. 이런 회사를 주식회사라고 하는데 역사전공이라 더 자세히 얘기할 자신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하고 빤스런하겠습니다. ㅠㅠ

2. Continental Europe Industrializes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이제 마침내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기가 18세기 후반인데 이때 유럽 대륙은 프랑스 혁명에다 나폴레옹 전쟁까지 겪고 있어 난리도 아니였기 때문에 산업혁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늦어졌지만 결국 산업혁명은 서서히 스며들게 됩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19세기 초반부터 유럽 대륙의 산업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유럽 대륙의 산업화도 미국과 비슷하게 산업스파이(...) 비슷한 사람들이 활약하게 됩니다. 벨기에 쪽에는 윌리엄 코커릴이란 사람이 영국에서 기계를 불법적으로 들여와 유럽 대륙에 산업혁명이 확산되는 기여를 하게 됩니다. 

유럽 대륙 쪽에서 가장 눈부신 산업혁명을 이루어낸 쪽은 바로 독일입니다. 원래 독일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초기만해도 나라가 산산히 갈라져 있기 때문에 산업화를 추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중반부터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정치적으로 통일의 기운을 타자 그것에 발 맞추어 산업화도 기지개를 펴게 됩니다. 

1840~1900까지 유럽 철도망의 길이를 그래프로 나타내었다. 독일과 러시아의 철도망 증가가 눈에 띈다.

독일은 영국보다 넓은 영토와 자원을 비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했습니다. 다만 정치적으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프로이센이 독일 여러 나라들 중 중심을 잡고 통일운동을 펴나가자 정치적으로 빠르게 안정되더니 1871년에 독일 통일이 달성되었습니다. 독일은 이 1800년대 후반에 완벽히 산업화의 궤도에 오르게 되더니 영국을 거의 추월하게 됩니다. 미국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왜 이렇게 산업화에 뒤쳐진 국가들이 산업화를 시작하자마자 빠르게 선진국을 추월하게 되었는 지는 두 가지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후발성 이득과 경로의존성입니다.

후발성 이득과 경로의존성의 예는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즉, 한강의 기적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후발성이득은 뒤쳐진 채 출발한 사람이 매우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먼저 출발한 사람의 경로를 보고 그 사람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압축적으로 경험하거나 혹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예시 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으나 앞선 선진국들의 산업화 사례를 보고 배워 굉장히 빠르게 산업화를 달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독일 역시 앞서 나간 영국의 산업화를 빨리 배웠기 때문에 영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경로 의존성은 일단 시작된 방향을 틀기가 어렵다는 건데 예를 들어 영국 같은 경우 일찍부터 산업화가 시작되어 가스등 인프라가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가스등이 처음 개발될 때는 그것이 좋은 것이었지만 뒤이어 전기등이 개발되었을 때는 이 가스등 인프라가 오히려 전기등을 보급하는 데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죠. 즉, 산업화를 하지 않아 아무것도 없는 나라가 더 빠르게 산업화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전쟁 이후 폐허 속에 다시 산업을 일으켰기 때문에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 2가지를 무기로 독일과 미국은 가파르게 산업화를 달성할 수 있었고 그 주변 나라 역시 빠르게 성장해나갑니다. 이처럼 혁명은 처음 시작은 어려우나 한번 시작되면 무서운 기세로 전파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3. Laissez-faire Economics

산업혁명이 전개되면서 그에 맞는 새로운 경제 이론이 나오게 됩니다. 산업혁명 이전에 유럽을 지배하던 사상은 중상주의였는데요. 중상주의는 강력한 보호무역을 표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보호무역을 행하던 16~17세기 유럽 경제 발전은 아메리카 대륙 착취에 기인한 것이어서 이렇다할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미칠듯한 인플레이션 현상인 가격혁명을 맞봐야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런 보호무역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서서히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당시 자유주의적 정치적 흐름을 경제에도 끌고 들어왔는데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면 시장은 알아서 잘 돌아가리라는 자유방임주의를 내세웠습니다. 사실 이 파트부터 역사보다는 경제에 훨씬 가까운 파트인데요. 좀 자신 없어서 수업말고 개학연기 기간에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망한 느낌... ㅠ 설명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그럼 자유 방임주의부터 봅시다.

자유방임주의의 어원은 정부는 걍 가만히 있으라는 거다. 사실 오늘날 자유방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거랑 별반 다를 바 없는 뜻이다.

Laissez-faire는 영어 같지가 않죠? 불어인데 대강 뜻이 걍 내비둬 정도 입니다. 직연하면 leave it alone 정도가 될거에요. 쉽게 말해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내비두라는 것입니다. 언어의 어원은 이런데 프랑스의 유명한 장관인 콜베르가 사업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하면 정부가 사업을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소?'라고 묻자 그걸 듣던 르 깡드르라는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패기 넘치는 대답을 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대체로 중상주의의 반대되는 위치에서 나왔기 때문에 중농주의자들 중에 자유방임주의자가 많았습니다.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의 대표인 애덤 스미스 역시 중농주의에 조금 더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이었죠. 애덤 스미스는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의 저작 국부론에는 한번 밖에는 언급이 안 됩니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의미는 시장 원리라기 보다는 개인의 이기적 경제활동 추구가 사회 전체 부의 증가와 연결된다는 의미로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뉘앙스입니다. 아무튼 이 얘기는 여기서 다룰 사안은 아니고 우리가 다룰 것은 애덤 스미스의 세 가지 원칙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경쟁은 인간에게 더 나은 상품을 만들도록 하고, 가격은 수요자를 만족 시키기 위한 가능한 최저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합리적인 수준의 설명이었고 오늘날에도 충분히 통하고 있습니다. 이런 스미스의 생각을 맬서스, 리카도와 같은 학자들이 더 발전시켰는데 이들을 고전 경제학자라고 부릅니다. 맬서스는 맬서스의 덫으로도 유명한 경제학자인데 인구 증가가 식량 증가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인구가 조정되고 전쟁이나 전염병이 일어나지 않아서 인구가 조정되지 않는다면 생계 유지 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비참한 상태에 이른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맬서스는 한발 더 나아가서 빈민층은 최대한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아니면 전쟁 한번 내서 억지로 인구를 조정해야(...) 한다는 신박한 이론을 냈는데 도덕적인 내용은 차지하고서라도 당시에는 슬프게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맬서스의 덫이 깨진지 오래였지만 실제로 1840년대까지만 보면 맬서스의 말이 상당히 현실성이 있었습니다.

리카도는 맬서스의 이론을 한 발 더 발전시킵니다. 이 사람은 비교우위, 노동가치설로 유명한 사람인데 우리 교과서에서는 그거보다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리카도는 하층민 노동자는 영원히 가난할 것이다라는 이론을 만들었는데 그 이론에 따르면 만약 인구가 적다면 노동자는 생활 수준이 향상되어 인구가 증가되게 될 것입니다. 인구가 증가 되면 자연스럽게 임금은 하락되겠죠.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이 안 좋아져서 다시 인구는 감소하고 이렇게 되면 임금이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리카도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임금의 변동은 있어도 결국은 노동자의 자연가격(노동자가 삶을 영위하는 최저 수준의 소득)에 맞춰진다는 것이였습니다. 뭐 얼핏 생각하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지요. 이처럼 고전경제학파들은 인구에 주목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고 맬서스처럼 하층민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발언을 쏟아내다보니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이즈음 자유방임주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이 나오는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더니 몇몇 큰 기업들이 가격을 담합하여 건강한 시장을 파괴하거나 독과점이 일어나는 형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몇몇 자본가들만이 이런 상황에서 부를 착취했고 빈부격차는 이제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장을 내버려두면 안 되는 상황이 왔고 노동자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이때 자유방임주의를 비판하고 나온 사상이 바로 사회주의입니다.

4. The Rise of Socialism

처음에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나온 것은 공리주의였습니다. 벤담, 밀과 같은 사람들인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한 번쯤 들어본 말이죠? 결국 이들은 많은 수의 사람이 행복을 누리려면 정부가 개입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소수의 독점 자본주의는 이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 시작된 것이죠. 공리주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사회주의입니다.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을 목격한 오웬 같은 사람은 뉴 라나크, 뉴 하모니와 같이 협동 조합을 만들어 아동의 노동을 금지시키고 대신 교육을 하여 이상적인 형태로 부를 재분배하려고 했습니다. 푸리에, 생시몽 같은 사람들도 이런 생각에 동의했는데요. 그들은 이런 빈부격차의 문제점이 몇몇 소수자의 부의 독점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자유시장 의존하기 보다는 경제를 계획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들은 공장, 광산, 철도 및 기타 주요 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빈곤을 종식시키고 평등을 촉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주요 산업이나 부의 생산수단을 공공의 품으로 귀속 시키냐? 인간은 착하니까 잘 설득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겁니다. 음, 말이 안되죠.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은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고 이때까지 저랑 역사 배웠으면 아실테지만 수많은 전쟁들이 별 시덥잖은 이유로도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들의 믿음은 순진함을 넘어 어리석어까지 보였습니다. 이러던 차에 진짜 사회주의라고 부를만한 것이 등장합니다.

5. Marxism: Radical Socialism

이제 본격적으로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갑자기 사회주의에 대해 설명하려니까 묘한 긴장감이 감도네요? 으어어어....

판사님 이 뒷부분은 저희집 고양이이자 사회주의 전문가 마르크스가 작성했습니다!

이 뒷페이지는 저희 집 고양이(다들 아시죠? ㅋㅋ) 마르크스가 작성한 걸로 하겠습니다. 요즘은 저희 애 때문에 격리되서 본가로 가 있는데 이 파트를 설명한다하니 득달이 같이 달려왔네요 ㅋㅋㅋ 자 마르크스는 이 위에 사회주의자들을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정리하면서 인간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로 정의했는데요. 그러면서 현재 자본주의의 상황은 유산자(가진자)인 브르주아와 무산자(못 가진자)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으로 보았습니다. 브르주아는 자신이 소유한 생산수단을 내놓지 않을 겁니다. 결국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요원한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어떻게하긴 뭘 어떻게 해요 폭력으로 뺏는다는 겁니다. 이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유산자 계급에 대해 무산자 계급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바로 단결이라고 본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한 유명한 말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탄생된 거죠. 여기서 앞에 말인 만국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노동자만 단결한다고 해서 이 문제(빈부격차)가 풀리지 않거든요. 만약에 국내 노동자들이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러면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게 되고 이러면 자본가 vs 노동자의 싸움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 vs 내국인 노동자의 싸움으로 번지죠. 만약 자본가가 공장을 이전해도 마찬가지 양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지만 빈부격차가 해소된다고 봤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생산수단을 몰수하면 그때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시작되어 생산수단이 완전히 사회화 되고 경제적으로 평등해질 때까지 정부가 사회를 통제하는 겁니다. 그리고 완전한 경제적 평등이 달성되면 자연스래 정부의 역할이 희미해져 계급없는 사회가 달성되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지는 완전한 공산사회가 달성될 것이라 보았습니다. 

마르크스가 작성한 짧은 문서인 공산당 선언에는 공산주의의 핵심이 담겨 있었고 그 파급력은 전 유럽뿐만 아니라 이후에 전 세계까지 뻣어 나갑니다. 실제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을 탄생시키기도 하죠. 하지만 마르크스 살아 생전에는 크게 사회주의가 기를 펴지는 못합니다. 1848년,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곳곳에서 혁명이 시작되었으나 완전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고 프랑스에 들어선 파리 꼬뮌도 마르크스가 생각한 공산주의하고는 모습이 달랐습니다. 만국의 노동자 단결을 위해 창설된 단체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무정부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서로 뒤엉켜 주도권 다툼만 하다 1876년에 해산되고 맙니다. 그 후에 인터내셔널이 다시 들어서긴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미 죽은 이후였죠. 그러나 마르크스의 주장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단결이 유일한 무기임을 깨달은 노동자들은 서서히 자신들만의 조직을 갖추게 됩니다.

6. Labor Unions and Reform Laws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들은 마르크스의 말처럼 단결하기로 결심하는데 이른바 노조의 탄생입니다. 처음에 탄생된 노조는 숙련공 중심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숙련공들은 대체하기 힘든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고가 쉽지 않아 높은 협상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노조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정부는 사실상 노조의 단체 행동을 인정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노조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1799년에 단결금지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단체 행동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암암리에 노조에 가입하면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영국은 1824년에 단결금지법을 폐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1886년 AFL(미국노동자연맹)이 헤이마켓 사건으로 결성되게 됩니다. 사실 미국은 AFL 이전에 노동기사단이라는 상당히 급진적인 단체가 노동운동을 주도하게 되는 데 헤이마켓 사건도 이들 주도로 일어나게 됩니다. 헤이마켓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간략히 말하면 8시간 노동을 위한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했고 이후에 일어난 시위에서 노동자 측에서 경찰을 향해 폭탄을 던지면서 시위가 겉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결국 이 운동을 주도한 지도부가 체포되는데 증거불충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형 판결을 받으면서 이후 세계적으로 노동운동이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정작 미국은 이런 과격한 시위를 본 이후로 점차 노조가 온건한 성향으로 변했고 이전에만 해도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정치 조직이 있었으나 지금은 진보라고 해봤자 온건한 민주당이 좌파 쪽 입장을 대변하는 미국 정치지형을 변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뭐 그건 나중에 미국사 얘기할 시간이 있으면 더 자세하게 다루고 싶지만 개학 연기로 시간이 없... ㅠㅠ

세계 노동운동의 큰 전환점을 준 헤이마켓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난 5월 1일이 바로 노동절이다

아무튼 노동자들이 단결하기 시작하자 정부와 자본가들도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을 해서 무분별한 자본가들을 규제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에서 1820년대와 1830년대에 공장과 광산에서 아동 노동과 노동 조건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의회는 1833년 공장법을 통과시켰는데요. 이 법에 따르면 9세 이하의 아이들을 고용하는 것을 불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예전에는 9세 이하의 아이들도 고용했다는 끔찍한 얘기겠죠. 실제로 이 기간에 조사되었던 사례들이 사료로 남아있어 산업혁명기 끔찍했던 노동사태를 우리가 접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또 다른 제약은 9세에서 12세 사이의 아이들은 하루에 8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3세에서 17세 사이의 젊은이들은 12시간 이상 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1842년 광산법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지하에서 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1847년에는 10시간법 제정되어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근무 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했죠.

미국도 아동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1904년에는 전국 아동 노동위원회를 조직되었습니다. 이들은 정치인들에게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최대 노동 시간을 정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후 각 주들은 여성의 노동 시간과 나중에 남성의 노동 시간을 제한할 수 있게 되었죠. 개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에 유럽과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고 여성 인권이 신장되는 등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인권도 개선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호레이스만 같은 경우 아동의 공교육을 주장했고 토크빌 같은 경우 교도소의 인권 향상을 주장했습니다. 죄지은 사람이 무슨 인권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죄수들을 사회에 적응시켜 재범율을 낮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납득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아무튼 산업화 속에서 인권이 서서히 전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이것으로 산업혁명 파트는 종료가 되었는데 사실 역사라기 보다는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적 관점에서 같이 봐야될 사건이 많습니다. 이후에 조금 더 깊이 공부하실 생각이라면 다양한 관점에서 산업혁명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pecial Question

- 만국의 노동자는 왜 단결하지 못하였는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데 한번 쯤은 얘기해보고 싶어 선정했습니다. 팀즈에서 토론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Posted by Av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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