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문제를 푸는 게시판입니다. 중단원 하나가 끝날 때마다 문제를 풀 예정입니다. 문제 풀이는 중단원이 끝날 때 선생님과 함께 풀게 될 겁니다. ^^ 오늘은 동트는 우리 역사 단원과 관련된 수능 기출 문제와 모의고사 기출 문제를 한 번 풀어볼께요.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국사 1번 문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의 문제는 유물의 사진을 주고 그 유물에 알맞는 시대를 고르는 문제가 대다수입니다. 이 문제도 그러한 형태를 하고 있지요? 먼저 (가) 유물은 구석기 시대의 유물인 뗀석기입니다. (나) 유물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반달돌칼이고요. (다)는 철기시대에 볼 수 있는 철제 보습인데 보습이라는 것은 쟁기날을 얘기하는 겁니다. 저걸로 땅을 갈면 더 깊이 파지겠죠? 그럼 이제 보기 내용을 볼게요. ① (가)는 뗀석기인데 제초 작업이나 이삭 자르기에 쓰일리가 없겠지요? 구석기 시대에는 농사를 짓지 않았으니까요. ② (나) 반달돌칼의 용도는 곡식을 수확하는데 있으니 땅을 개간하고 곡식을 심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③ (나) 반달돌칼 사용이 확대되면서 (다) 철제 보습이 사라졌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두 개가 하는 일도 다른데요 ^^ ④ 이게 정답입니다. 철제 보습을 사용함으로써 더 깊이 땅을 갈는 것이 쉬워졌습니다. ⑤ (다) 철제 보습은 철기 시대인데 (가) 뗀석기 보다 일찍 출현했을리가요? 시간순으로 배열하면 (가)-(나)-(다)가 되야 맞습니다. 정답은


<2011학년도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모의고사 사회탐구영역 국사 1번 문제>

이것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표적인 유물을 주고 그 유물에 맞는 시대상을 고르는 문제네요? (가)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입니다. (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 반달 돌칼이고요. 이제 보기를 분석해봐야겠네요. 먼저 갑입니다. 갑은 (가)가 사용된 시기에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발생했다고 했습니다. 틀린 말이죠? 신석기 시대 때는 평등한 공동체 사회였습니다.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발생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 입니다. 을의 주장을 봅시다. 을은 (나)가 사용된 시기에 산을 등지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에 살았다는 말을 하고 있네요. 맞습니다. 청동기 시대부터 집들이 점점 지상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리고 식량이 풍부해지자 더 이상 고기잡이가 신석기 시대만큼 중요하지 않게 되어 안전한 구릉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죠. 따라서 뒤에는 산을 두고 집 앞에는 농사짓기 위한 물을 구하기 쉬운 지역에 살게 됩니다. 이것을 유식한 말로 배산임수라고 합니다. 이제 병의 주장을 봅시다. (가)는 슴베찌르개, (나)는 바퀴날 도끼를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나오네요. 슴베찌르개는 구석기 시대에 사용된 도구입니다. 그러니까 아니죠?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 시대에 처음 사용되니까요. 바퀴날 도끼는 청동기 시대에 사용된 것이니까 뒤에 것은 맞는 말이네요. 그래도 앞이 틀렸으니까 병의 주장은 틀렸습니다. 정의 주장을 보죠. (가), (나) 시대 모두 돌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죠?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모두 농기구는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을, 정이 맞는 주장을 했고 정답은 ④.

모두 수고했습니다. ^^
Posted by Avila
,


  안녕하세요? ^^ 이곳에 올리는 수업자료는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거의 비슷하게 올라갑니다. 다른 성격의 자료들은 다른 게시판에 올릴 겁니다. 어쨌든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지요? 바로 수업에 들어가봅시다.

  여러분, 역사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전 정말 역사를 좋아해서 평생 이 과목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어 대학교에서 4년 내내 열심히 배웠습니다. 정말 재미도 있었구요. 이런 저를 보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겠죠? ㅠㅠ>

 

  아마 대다수 학생들은 역사가 암기과목이다, 따분하고 지루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제가 너무 지레 짐작했나요? ^^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 선택 비율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기도 하죠.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한국사 선택비율, 여러분의 잘못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역사 과목에 흥미를 못 느끼는 건 이것이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아닐까요? 솔직히 1884년 갑신정변 일어나고 1894년 갑오개혁 일어나고 그 다음에 어쩌구 하는 알 수 없는 연도들로 채워진 역사 과목이 여러분의 흥미를 더욱 떨어트린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사실 역사라는 과목은 우리의 삶이에요. 왜 그런지 보실까요?

<최근 김수현이 열연한 별에서 온 그대> 

  이 인간이 역사 얘기 하는데 왜 뜬금 없이 별에서 온 그대 얘기를 하는 지 궁금하시죠? 별건 아닙니다. 제가 김수현 대학 선배라서요. 후훗. 죄송합니다-_-;; 사실 김수현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별에서 온 그대는 잘 알죠.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인이라는 다소 황당한 소재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죠. 왜 일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500년을 넘나든 인물인 도민준에게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드라마를 보면서 500년이라는 시간의 장벽을 느꼈나요? 그렇지 않았죠? 그것은 우리가 과거의 인물에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하면 과거의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즉, 사람 사는 건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 우리들의 인생이 바로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자, 이제 역사 해볼만한가요?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가봅시다.


I. 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국가의 발전
1 선사 문화와 한민족의 기원
주제 1 선사 문화의 발전

선사시대, 문자가 없다네!

  먼저 알아볼 시대는 선사(先史: 먼저 선, 역사 사)시대입니다. 여러분 선사는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일까요? 먼저 선(先), 역사 사(史). 선사라는 말은 역사 앞에 선행한 시대를 얘기합니다. 역사란 과거에 지나간 시간을 얘기하는데 그 보다 더 과거가 있다니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럼 선생님이 예를 들어 볼게요. 여러분 역사, 사실을 어디서 배우나요? 책에서 배우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책에서 배웁니다. 이 책은 역사학자들이 옛날 '문자 기록'을 보고 다듬어서 다시 엮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라는 것은 곧 문자가 있어야 기록되고 그것을 통해 옛날 일을 알 수 있다는 뜻이 되네요. 하지만 만약 문자가 없다면? 옛날일을 알수 없게 되죠. 즉,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기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시대를 역사 이전의 역사라는 의미에서 선사시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기록이 없는 이 시대의 이야기를 어떻게 우린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수업을 하다가 쓰러졌다고 생각해봅시다 ㅠㅠ>


 

  제가 수업하다가 쓰러져서 묻혔다고 생각해봅시다. ㅠㅠ 그게 200년 후에 누군가에 의해서 발굴되었어요. 제 주변에 뭐가 많이 묻혀있을까요? 네, 바로 분필이죠. 사람들은 200년 전 분필이라는 물건이 어떤 용도로 어디에서 많이 쓰였고 어떤 사람들이 많이 썼는지를 분석할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금방 알 수 있겠지요? 이처럼 선사시대 때는 문자 기록이 없으므로 절대적으로 과거에 사용했던 물건(유물)에 비추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유추할 수 있는 겁니다.

돌로 만든 도구로 그 시대상을 알아보다.

  그럼 선사시대에 많이 나온 유물은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돌로 만든 도구들입니다. 한자로 석기(石器: 돌 석, 그릇 기)라고 부르는거에요. 이 석기의 형태를 보고 좀 오래되고 투박한 형태들을 구석기 시대 것으로 약간 세련되고 갈아만든 형태의 것을 신석기 시대 것으로 분류한답니다.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

<신석기 시대의 간석기>

뗀석기로 사냥하고 불을 써 동물을 쫓다

  구석기 시대의 시대상을 알아볼까요? 우리나라의 구석기는 약 70만년 전에 시작되었어요.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게 된 경위가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은 일제시대때 발견했는데 당시 자신들 나라에 구석기 유적이 발견 안되는데 식민지인 조선에서 구석기 유적이 나오자 일본은 열이 받았습니다-_-! 그래서 그 유적을 고대로 다시 묻어버리죠;; 그래서 한동안 잊혀졌다가 해방 이후에 다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됩니다. 사설이 길었네요. 본격적으로 구석기 시대상을 볼까요? 여러분들은 영상을 더 좋아할 것 같아서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영화 '불을 찾아서'의 영상입니다.


<불을 쓰는 구석기인>


<도구를 제작하는 구석기인>

  영화를 보면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조금 엿 볼수 있습니다. 구석기인들은 불을 사용해서 동물과 추위에 맞서 싸웠고 또한 돌을 사용해서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구석기인들이 자주 사용했던 도구는 뗀석기라 불리는 것입니다. 뗀석기는 돌끼리 부딪혀서 떨어져 나간 파편의 날카로운 부분을 다듬어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제작방법과 쓰임새는 다음과 같아요.

<뗀석기 제작법>

<뗀석기의 쓰임새>

  사실 위에 있는 다양한 구석기가 처음부터 다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찍개, 주먹도끼와 같이 단순한 도구가 만드러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다양한 석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뗀석기 하나 가지고 다양한 작업에 모두 사용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뗀석기 하나 당 오직 하나의 용도로만 사용하게 됩니다. 후기로 가면 슴베찌르개와 같이 아주 작고 정교한 석기들도 나오는데 이러한 작은 석기의 출현은 기존의 대형동물을 사냥하던 시대에서 점차 토끼와 같은 소형동물이 많아지면서 석기도 같이 작아진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씁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석기인들은 뗀석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불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동물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문자는 없지만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이 또 동물하고는 다른 점이었어요. 언어를 사용하면 자연히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했겠지요? 그래서 말을 통해 선대에서 겪었던 경험이나 문화 같은 것은 전달 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되어지네요.

  그렇다면 구석기인들은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구석기인들은 농사를 짓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주로 열매를 따먹는 채집을 하거나 동물을 사냥하면서 먹고 살았죠. 그렇다면 열매가 떨어지거나 사냥을 할 동물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요. 이동을 했습니다. 

<엄마 찾아 아니 먹이 찾아 삼만리!>

  이동생활을 했기 때문에 집을 공들여 지을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동굴에서 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간단하게나마 막집이라는 것을 지었습니다. 막집이라는 이름만 봐도 집에 별로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

  구석기인들의 생활을 알아보았는데 구석기인들이 미개하다고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입장을 바꿔서 1000년 후 사람들이 지금 우리 시대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들도 우리를 미개하다고 여기지 않을까요?

<누군가 여러분을 업신여기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기분 나쁘지 않나? ^^;;>

  그래서 역사는 그 시대 상황을 생각해야해요. 구석기인들은 그 시대 상황에 맞게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한 거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지금의 환경에 적응한거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그들도 우리와 다를바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사랑도 하고 감정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사람이거든요 ^^

  감정을 느낀 사람들이였느니까 당연히 그 감정을 표현했겠죠?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느낀 감정을 표현한 물건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요 예를 들어 물고기를 새긴 조각이나 사람 얼굴을 새긴 사슴뼈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제작한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물고기를 새긴 조각,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떤 감정으로 이런 조각을 남겼을까요?>


토기가 제작되고 농사가 시작되다

  이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봅시다. 우리나라의 신석기는 기원전 8000년경 부터 시작되요. 여러분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면 놀랄만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뭘까요? 농사요? 물론 농사 짓는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지요. 그래서 신석기 혁명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농사가 시작된 것보다 더 빨리 나타난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토기의 출현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응 왜 갑자기 사랑과 영혼??>

  음, 이 영화 아시는 분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마 모르실텐데 ^^;; 도자기 빚는 신으로 유명한 바로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인데요. 특히 이 장면이 명장면이죠. 도자기는 토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토기를 만든다는 말은 비로소 인간다운 삶에 가까워졌다는 뜻도 되요. 흙을 빚고 굽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인데 이제 그런 작업을 수행하고 거기에 음식을 담아 먹을 수도 있게 되었으니 놀랍지 않습니까? 갑자기 도자기 빗는 장면이 새삼 다르게 보이나요? 아니면 말구요 ㅠㅠ;

<바닥이 뾰족하고 표면에 빗살무늬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 신석기를 대표하는 빗살무늬 토기입니다>

  토기의 출현과 더불어 또 한가지 중요한 변화는 농경의 시작입니다. 농경의 시작은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까요? 농사를 짓게 되면 어떤 변화가 올지 한 번 생각해봅시다. 씨를 뿌렸습니다. 그 씨가 자라서 열매가 맺겠지요? 그 동안 사람이 옆에서 계속 돌봐주어야 하겠지요? 얼라리 그러면 옆에 계속 있어야겠네요. 맞습니다.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인간은 드디어 정착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움집이라는 집도 짓게 되는 것이죠. 자세히 보시고 싶다면 서울 암사동에 유적지가 있으니 거기로 가보는 것도 좋아요 ^^


<암사동 선사유적지 움집>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었음에도 식량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아요. 왜일까요? 아직까지는 농업기술이 지금처럼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농사만 짓고는 살 수 없었어요.

 

<생산량이 적어서 현기증이 나잖아요! ㅠㅠ>

   네 맞아요. 아직 생산량이 적어 배가 고파 현기즈이 나요. ㅠㅠ 그렇기 때문에 신석기 시대에도 여전히 사냥과 채집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신석기 시대 들어 또 한가지 중요한 활동은 바로 물고기잡이에요. 어로(漁撈: 고기잡을 어, 잡을 로)라고도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 시기에 낚시바늘 따위가 많이 출토되요. 자연히 주거 지역도 강가나 바닷가에 많이 형성됩니다.
 

<신석기 시대 낚시 바늘>


  먹을 것이 충분치 않았으니 남는 식량도 없었겠지요? 남는 식량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날 그 날 생산한 식량을 나누겠죠? 이때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게 식량을 분배받습니다. 각자 맡은 바 일을 모두 충실하게 수행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였지요. 따라서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계급 같은 것이 출현하지 않았지요. 족장은 있지만 족장은 대개 나이 많은 사람이자 존경 받는 사람이지 큰 권력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신석기인들은 평등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신석기인들이 살던 공동체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혈연을 바탕으로한 공동체, 유식한 말로 씨족이라 하는데 이 씨족은 언니, 누나, 아들, 딸, 삼촌, 이모 등등 자기 가족들 끼리 모여살았지요. 하지만 같은 가족끼리만 보여살면 어떻게 될까요? 너무 자기 가족 밖에 모르겠죠? 바깥하고 교류할 기회가 줄어드는 거에요. 그래서 이 시기에는 결혼만큼은 씨족 내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씨족 밖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 되었습니다. 이를 족외혼(族外婚: 겨레 족, 바깥 외, 혼인할 혼)이라 합니다.  이 족외혼을 통해 씨족은 단위가 더 커져서 부족이 되지요. 아마 이런 형태로 바깥하고 교류하지 않았을까 역사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어요. ^^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신석기 시대는 구석기 시대에 비해 다양한 활동이 많이 추가가 되었지요? 이런 다양한 활동들은 모두 자연에 기반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에 대한 관심이 구석기 시대보다 많이 높아졌어요. 농사를 짓다보니 비는 왜 내릴까? 천둥은 왜 칠까 궁금해진거죠. 그래서 어떤 대단한 존재가 그것을 움직이나 보다라고 생각을 하게되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크게 세 가지 형태의 믿음이 있었는데요. 태양이나 물과 같은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행위를 애니미즘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형태의 신앙이 지금에도 내려오고 있어요. 혹시 등산을 가게 되거나 시골에 내려가게 되면 뭐 엄청 커다란 바위라든가 오래된 나무 따위가 신령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형태 있지요? 그런 것도 모두 애니미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중개해주는 역할인 무당과 무당이 쓰는 주술을 믿는 형태가 있어요. 이것이 바로 샤머니즘으로 지금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요? 곳곳에 아직 죽은 사람과 접신(?)하는 많은 무속인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동물이나 식물을 부족의 수호신인 상징으로 섬기는 형태입니다. 이런 것을 토테미즘이라고 해요. 단군신화에도 이런 모습이 보여요. 현대에도 이런 모습이 간혹있지요. 혹시 야구 좋아하시나요? 저는 삼성 라이온즈의 팬인데요 ^^ 삼성 라이온즈 하면 팀의 상징이 사자지요. 삼성이라는 프로야구팀을 하나의 부족으로 생각한다면 삼성 부족의 상징은 바로 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런 종교 형태가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에게 유물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종교적 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어요.

<중앙에 조개가면, 조개 가면 양 옆에는 뼈치레걸이(몸에 하는 장신구 따위입니다. 팔찌나 귀걸이 같은 거죠)  아래 있는 건 낚시 도구에요. 낚시도구는 종교하고는 관련 없습니다 ^^;>


  출토된 유물 중 역사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조개가면과 팔찌입니다. 이 조개가면은 주술적 성격이 강하지 않았나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구석기와 신석기 주거지역의 차이?

자 여러분 모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수고하셨구요 ^^ 끝으로 문제를 하나 낼까 합니다. 자 먼저 지도를 보시죠.

<구석기 유적지 분포>

<신석기 유적지 분포>


  다음은 서로 다른 두 시기의 유적지 분포입니다. 이 지도를 보고 구석기 시대의 주거지와 신석기 시대의 주거지가 어떻게 달랐을지 유추해볼 수 있을까요? 정답은 이 다음줄을 드래그로 긁으면 짠하고 나옵니다!

  정답 : 거주지가 구석기 시대는 내륙 지방인 반면 신석기는 주로 해안지역이나 강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신석기 시대에 물고기 잡이 활동이 매우 중요해졌음을 의미합니다.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수업자료이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태클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이 글은 2011년도에 작성되어 교육과정에 의해 2014년도에 수정되었습니다. 수정된 내용은 구석기 석기 변화 파트, 예술작품 추가, 홍산문화 삭제 및 이미지 교체입니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홍산문화가 삭제되었는데 이전 글을 지우기는 아까워 뒤에 붙였습니다.  

---------------------------------------------------------------------------------------------------

신기한 선사 문화, 홍산문화(교육과정 바뀌면서 제외됨)

끝으로 책에 나와 있는 홍산 문화 얘기를 해야겠네요. 홍산문화는 여러분이 처음 접하는 것이고 아마 생소할 겁니다 ^^ 일단 위치부터 보실까요?

<대릉하라고 표시된 곳이 보이시죠? 저쪽이 홍산문화입니다.>

홍산문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0~3000년전의 문명이에요. 이 유적에서 재밌는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출토된 유물들의 사진은 이 블로그(http://blog.naver.com/paxzim?Redirect=Log&logNo=70068116492)에 가시면 볼 수 있어요. 이 문명이 주목 받는 것은 중국의 황하 문명의 할아버지뻘 되는 양사오 문화보다 연대가 앞섰다는 겁니다. 그리고 중국 문화와도 구별 되는 것들이 많았죠. 한때는 고조선 성립의 배경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단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요. 우리나라 유물과도 다른 계통이 유물이 많이 존재해요 ^^; 따라서 이 문화가 중국의 것이나 우리나라의 것이다라고 확정지어 말할 수 없지요. 다만 확실한 것은 중국의 문화든 우리나라 문화든 이 문화와 연관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Avila
,

  보통 우리나라 역사 중 가장 안타까운 부분을 몇 가지 꼽아보라면 고구려가 삼국통일 못했던 것, 고려 때 북벌운동을 더 이상 추진 못했던 것 그리고 일제에 강제로 병합당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에 강제로 병합당한 책임을 두고두고 조선에 물으며 조선은 사상적으로 성리학에 사로잡혀 꽉 막힌 나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사실일까? 이런 기존의 통념을 산산이 부수어주는 책이 바로 조선의 힘이다.

 

조선의힘조선500년문명의역동성을찾다
카테고리 역사/문화 > 한국사 > 조선시대 > 조선시대일반
지은이 오항녕 (역사비평사, 2010년)
상세보기

  필자도 역사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상당히 조선을 우습게만 보고 있었다. 한국사 중에서는 조선사보다는 고려사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하고 나서 내 생각은 완전히 무너졌다.

  대개 나라가 500년 이상 지속되면 그 나라가 어떻게 해서 500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는지 그 원동력을 먼저 찾아야 맞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 제국이 왜 멸망했나라는 이유를 찾기 보다는 어떻게 그런 거대한 제국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나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온당하고 타당하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경우는 이런 질문에 귀를 기울이면서 왜 조선에는 이런 질문을 기울이지 않는가?

  조선은
50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힘을 이 책의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이 제작될 수 있었던 시스템, 성리학이라는 철학 체계, 대동법이라는 수취체제가 혁신하는 과정에서 찾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경우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기록 문화유산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 역사책이 얼마 없다는 식의 얘기는 이제 그만 두어주길 바란다. 조선왕조실록은 그 내용의 양이나 내용의 신뢰성이 그 어떤 사서보다 높다. 이런 조선왕조실록을 만들 수 있었던 조선의 시스템은 우리는 이때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실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비난을 한 몸에 받아온 성리학 역시 저자는 명쾌하게 반박한다. 실용성과 이념은 함께 가야하는 것이며 이념 없는 실용은 중심 없이 세상에 휩쓸릴 뿐이며 실용 없는 이념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성리학은 망상에 불과한 학문이 아니라 실제 백성을 다스리는 데 이로운 학문이었고 그 학문이 단단한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 동안이나 지속해 올 수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대동법의 혁신 과정도 살펴보면 조선의 놀라운 힘을 엿볼 수 있다. 여론이 안 좋거나 결과가 조금만 안 좋아도 추진하던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최근의 세태와 달리 조선은 대동법을 아주 끈기 있게 추진해나가며 반론을 충분히 받아가면서 결국 혁신하는 시스템을 완성시킨다. 정말 조선은 우리의 귀감이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조선을 오래된 미래라고 얘기 하고 있다.

  끝으로 광해군에 대한 오해를 저자는 걷어내고 있는데 이 부분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이전까지 긍정적 평가를 받아온 광해군이 저자의 치밀한 자료 수집과 해석으로 개혁 군주에서 정치에 실패한 무능한 군주로 평가가 바뀌었다. 실제 광해군 시절 지어진 궁궐 공사 규모와 비용은 조선의 한 해 예산에 15~25%를 차지하는 것으로 이런 공사가 광해군 재위 시절 내내 진행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끔찍할 지경이다. 광해군의 외교 정책 역시 인조의 외교 정책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드러나자 이제 광해군을 더 이상 높게 평가해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학계에서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참 재밌는 책이었고 유익했다. 몇 몇 부분은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저자의 주장은 확신이 있었고 그만큼 근거도 충분했다. 이제 조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Posted by Avila
,